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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으로 행복하기

by 시골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후배와 출장을 간 적이 있다. 호텔 방에 앉아 다음날 발표할 자료를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회사의 사활을 걸만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팀에게는 일 년 농사의 성패를 가름할 만큼 중요한 일이어서 신경이 날카로웠다. 나만 그랬다.

자정 무렵 잠을 청했지만 두 시간도 못 잤다. 그마저도 발표 내용을 잃어버리는 악몽에 시달리거나, 잠든 것도 잠들지 않은 것도 아닌 뒤척임을 반복하며 밤을 꼬박 새웠다. 이것 역시 나만 그랬다. 후배는 아주 푹 잤다.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근처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회사 주변에 즐비한, 뛰어나게 맛있지도 못나게 맛없지도 않은 평범한 식당이었다.

“와! 정말 맛있네요! 하루 시작이 행복해요!”

연극배우 톤의 유난스러운 감탄이 거슬렸다. 게다가 나는 앞으로의 일이 신경 쓰여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금세 뚝딱 비웠다.


“날씨가 정말 좋아요! 이렇게 기분 좋은 햇살이라니!”

이 자식, 오늘 일에 관심은 있는 걸까? 뭐가 그리 좋냐고 한 소리 쏘아대고 싶은데, 태만하기는커녕 어제 자정까지도 군소리 없이 도와온 모습이 떠올라서 꾹 참았다. 대신, 커피를 사 먹여 입을 막기로 했다.

“회사 근처 카페라 그런지 커피 맛이 경쟁력 있네요!”

졌다. 내 능력으로는 저 입을 막을 수 없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 긴장이 풀리며 잠이 쏟아졌다.

“과장님, 오늘 진짜 멋있었어요! 어쩜 말씀을 강사처럼 잘하세요? 과장님이랑 일해서 행복해요, 정말!”

운전대를 잡고도 쉬지 않는 입이 신기해 물었다.

“하루 종일 뭐가 그렇게 행복해? 사실 밥도 커피도 그냥 그랬잖아. 그리고 아침 햇살이 다 거기서 거긴 데. 행복해지겠다는 자기 최면 같은 거야?”


“어릴 때 아파서 죽을 뻔했어요. 비유가 아니고 진짜 죽는 거요. 병실에 누운 저를 보며 부모님은 살려만 달라고 기도하셨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매일매일이 행복이에요. 자칫하면 보지 못할 하루였자나요. 그리고 신기하게 행복하다고 말하다 보면 정말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푹신한 호텔 침대 위에서 잠을 못 이뤘을까? 맑은 날의 햇살과 난생처음 가본 식당의 손맛을 몰라봤을까? 결전을 앞두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지 못했을까?


그 말이 맞다. 행복하다고 말해야 행복해진다. 행복은 이따금 찾아오는 귀한 손님이 아니다.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평범함도 행복하다고 규정짓는 순간 특별하고 새로워진다.

행복은 선언이고, 능동적 실감이며, 내 멋대로의 기준이다. 쟁취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위로가 필요한 어른을 위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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