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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의 술래잡기

by 시골쥐

불안과 나는 평생 술래잡기 중이다. 언제나 술래는 불안이고, 나는 도망치는 역할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잡히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 게임이 점점 재미없어진다.

어떤 날에는 커다란 불안 하나가 나를 쫓고, 어떤 날에는 작은 불안들이 우르르 쫓아온다. 돈, 건강, 실패, 사고와 위험… 도망치는 건 나 혼자인데, 술래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불안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스스로 이곳저곳을 뒤져가며 억지로 찾아내기도 한다. 쫓기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끝날 줄 모르는 이 술래잡기의 끝은 대체 언제일까?


어김없이 불안에게 쫓기던 어느 날, 도망치듯 운전대를 잡고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무슨 알고리즘을 따랐는지 스마트폰에서 기분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비틀즈의 <Let It Be>.

복잡한 가사들은 리듬에 흘려보냈지만 듣고 싶은 문장만큼은 선명히 귓가에 머물렀다.

‘Let it be, 그대로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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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불안과의 술래잡기를 자처한 건 나 자신이었는지 모른다. 불안은 그저 시간과 상황의 흐름을 따라 세상을 떠돌 뿐인데, 그대로 두면 스쳐 갈 불안들을 굳이 들춰내며 잡아챈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그래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차피 내 뜻대로 지울 수 있는 불안이 없기도 하고,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난다는 말을 대범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싶어졌다. 사실, 지금까지 나를 쫓던 불안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오랜 시간 확인했기에 가능한 다짐이었다.


어릴 적, 엄마의 부름에 따라 놀이터를 떠나는 친구를 붙잡지 않았던 것처럼 스쳐 가는 수많은 불안의 덜미를 더는 붙잡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길었던 술래잡기를 맺음 짓기로 한다.

………

………

그러고 보니, 술래는 불안이 아니라 나였던 걸지도.



마음을 위한 텍스트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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