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선배가 아이를 유산한 일이 있었다. 술을 마시면 가끔 형이라 부르기도 하는 사이였다. 팀장에게 소식을 듣자마자 전화하려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만두었다. 결혼도 임신도 해보지 않은 나는 상실을 위로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휴가를 받아 선배가 며칠 출근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선배가 출근하던 날부터 출장이 시작돼 나도 며칠 회사를 비웠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 다시 만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평범한 날을 보냈다.
얼마 후 회식에서 우연히 선배와 둘만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형수님 몸은 좀 괜찮아요?”
“빨리도 물어본다. 인마.”
핀잔 섞인 말투에 머쓱했다. 형이 서운해하고 있었다.
유산을 하고부터 한동안 못 만나서, 내가 없는 사이에 같은 질문을 오죽 많이 받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 일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얇게라도 아물던 상처를 또다시 들출까 봐 말을 아꼈다. 솔직히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선배는 물어주기를 기다렸다. 수십 번 오갔던 질문과 대답이라도 다시 하고 싶었나 보다. 나에게는 조금 더 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내가 묻지 않아 대답할 기회가 없었다. 그날 나는 오랫동안 그의 마음을 들어주었다.
조문객들이 상주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를 들은 적 있다. 고인의 죽음만으로도 숨 가쁠 상주에게 왜 하나같이 ‘어떻게 된 거야?’라는 질문을 하는 걸까.
상주는 죽음의 과정을 설명하며 무뎌진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물을 터뜨리며 통곡하기도 한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이것을 반복하며 상실을 실감하고, 상실에 무뎌진다. 그것이 가족을 보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자 조문객의 역할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위로는 받는 사람의 부탁이 아니라 하는 사람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늘 먼저 물어야 한다. 혹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는지. 그러면 대답을 줄 것이다.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상대방 마음은 그때부터 헤아려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