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
편의점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고양이였는데, 이 아이를 예뻐하는 사람이 많아서 고양이 간식이 잘 팔렸다. 손님을 따라 들어와 간식 매대 앞에서 야옹거리며 영업을 했다. 안 사줄 재간이 없었다.
그런 고양이가 귀엽고 예뻐서 사장님이 밥과 집을 주었다. 그쯤 되니 이름이 필요해진 것이다. 편의점 마스코트로서의 이름.
‘애수’라고 지어주었다. 때마침 사장님이 지 씨라서 더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GS편의점 지 사장님의 고양이 ‘지애수’.
애수야~ 라고 다정히 부르니, 마치 처음부터 제 이름이었던 냥 고양이가 대답했다. 만족한 사장님이 과자와 음료를 봉지 넘치도록 싸주었다. 작명 값치고 후한 사례를 받았다.
이후 빼빼로데이 같은 이벤트 기간마다 행사 매대 위에 애수가 앉아 있었다. 애수의 자발적 마케팅이었다. 물론, 보통날에는 간식 영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게 고양이에 관해 이것저것 묻던 사장님이 고양이 박사가 됐다. 세 마리를 키우던 나보다 더 고양이를 잘 아는 사람이 됐다.
간식 매대 앞에는 작은 메모가 붙었다. ‘애수는 마음으로만 예뻐해 주세요. 간식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매출보다 애수의 건강이 우선이라는 뜻, 짧은 문장만으로도 그 아이가 이곳에서 어떤 의미가 됐는지 알 수 있었다.
한 회사의 상호가 한 생명의 이름이 되고, 누군가의 가족이 되었다. 대수롭지 않던 일상 단어가 삶에 고유명사로 각인되면서 그것으로 불리는 존재를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했다.
이름 하나로 참 많은 게 변했다. 이름 하나 얻었을 뿐인데 참 많은 걸 얻은 듯하다.
불안하고 불완한 어른을 위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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