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특수반’이라는 게 있었다. 그곳에 들어간다는 건 담임이 그 학생이 명문대에 입학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정규수업과 보충수업은 각자가 속한 반에서 들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만 특수반이라고 부르는 교실에 따로 모였다. 하루 딱 세 시간만 운영되는 반이었다.
그곳에 들어가고 싶어 애쓰는 친구가 있었다.
“거길 왜 가고 싶어? 과외라도 시켜준대?”
“똑같아. 감독 있고, 쉬는 시간 있고, 자습하고.”
공부가 더 잘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낯선 애들 많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은 걸까 싶었다. 매점도 더 먼데.
수능을 며칠 앞둔 날, 평소 쌀쌀맞던 한 선생님이 초콜릿을 나눠줬다. 오!!, 약속하지 않는 탄성이 교실에 울렸다. 남고에도 감성은 있었다.
세 알이 나란히 놓인 페레로로쉐가 새초롬한 선생님의 마음 같았다. 저 성격에 이걸 사러 마트에 갔을 생각을 하니 감사하고 감동했다.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터뜨린 탄성이었을 것이다.
하굣길에 한 알 꺼내먹었다. 같이 가던 옆 반 친구에게도 선생님 얘길 하며 나눠주었다. 하나 남은 걸 그 옆 친구에게 주려는데 괜찮다고 했다. 자기도 있다고. 그러더니 하트모양에 담긴 페레로로쉐를 꺼냈다. 족히 열 알은 돼 보였다.
“어? 그거 샀어? 비싸지 않아?”
“아까 선생님들이 주던데?”
“선생님들?”
“어, 찹쌀떡도 받았는데, 먹을래?”
특수반이었다. 기대되는 수능성적에 비례해 다른 수의 초콜릿을 받았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챙겨준 건 고마운 일이었다. 떡은 구경도 못했다.
수능을 앞두고서야 왜 특수반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기대를 기준으로 차별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안한 어른을 위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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