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에세이]아빠의 고향

by 시골쥐

아버지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나 평택에서 학교를 다녔다. 성인이 되고는 잠시 충청남도 천안에 머물다가 강원도 원주에 터를 잡고 생계를 꾸렸다. 몇 년 전부터는 일자리를 옮겨 동해에 산다. 아버지에게는 이렇다 할 고향이 없다.

고향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세 가지다.
1. 태어나 자란 곳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첫 번째, 두 번째는 선택권 없이 주어지는 것이라서 나는 주로 세 번째를 고향의 의미로 꼽는다. 그래서 내 고향은 강남역이다. 그곳엔 대양의 청새치 같던 이십 대의 내가 있었다. 늘 그립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홉 해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형, 누나, 아빠, 엄마를 순서대로 잃고 진짜 고아가 됐다.
자식을 둘이나 앞세운 가정이라 금지옥엽 컸을 것 같지만,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아들과 딸을 잃은 부모는 남은 자식 보필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이런 연유로 아버지는 모든 걸 혼자서도 잘했다.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완전한 자립형 인간이었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가 자꾸 할머니 방에 간다. 할머니도 없는 할머니 방에 앉아 TV를 보고 낮잠을 잔다.
TV는 무조건 큰 게 좋다며 거실에 벽 한 면 만한 것을 놓은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자막이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화면을 보며 할머니 방에 머문다.

아버지가 자꾸만 영상통화를 건다. 내 아들에게 안부를 묻고 장난감 사주겠다며 놀러 오라 꼬신다. 이러면 아이의 성화를 못 이겨 본가에 가야 한다. 격주 간격으로 장거리를 왕복하는 일정이 생긴다.
갈 때는 설레고 올 때는 두 손 무거운 아이와 달리 나는 얻는 것 없이 어깨만 무겁다. 피곤이 쌓인다.

아버지 댁 신발장 위에 담뱃값이 놓여있다. 개와 고양이가 필 일은 없으니, 어머니 아니면 아버지 것이다. 당연히 후자다. 아버지가 끊었다고 자랑하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내가 내 아들만 했을 때, 아버지에게 왜 담배를 피우는 거냐고 물은 적이 있다. 속상해서 피우는 거라 답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요즘 많이 속상한가 보다.

느티나무 같던 아버지의 마음이 휘청인다. 자립한 것인 줄 알았던 아버지의 마음이 뿌리를 잃고 휘청인다. 그래선지 자꾸만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된다.
기댈 곳을 찾아 뿌리의 흔적 안에 머물고, 자신이 뿌리가 되어준 아이를 찾아 기대도 본다. 여전히 풀어지지 않는 속상함은 담배로 달랜다. 평소와 달리 궁상스러움이나 체면 따위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렇다 할 고향이 없던 아버지에게 고향이 생긴 것 같다.
다시 볼 수 없어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곳이 생겼다. 응석 한 번 제대로 부려보지 못했으면서도 정겨운 모습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사람, 이제는 그리워하는 것밖에 할 수 없어 더 그리운 사람.
아버지의 뿌리, ‘엄마’.


5월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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