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였던 아버지의 인생은 파도가 많았다. 남부럽지 않게 잘될 때가 있었지만, 큰일났다 싶을 만큼 안될 때도 흔했다. 내가 취직해 월급을 받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큰일이 났었다.
벌이가 어려워지면서, 정확하게는 20년 넘게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슈퍼맨 같던 아버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산전수전을 이겨내며 가정을 지켜온 나의 영웅이 무너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작은 보너스를 받은 날, 회전초밥집에 갔다. 기력 잃은 아버지에게 음식으로나마 위안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 동네에나 하나씩은 있을 법한 평범한 식당이었다. 고급은 아니지만 대형마트 초밥처럼 흉내만 낸 것도 아닌, 적당한 맛과 그에 걸맞는 가격. 대식가 가족의 특별한 외식에는 더없이 적합한 곳이었다.
식사가 이어지면서 각자 앞에 빈 접시가 쌓였다. 여러 가지 색깔의 접시가 층층이 쌓이며 알록달록한 탑을 이뤘다. 그런데 아버지의 탑은 그렇지 못했다. 단조롭고 재미없었다.
아버지는 가장 저렴한, 이를테면 달걀말이에 얇은 김을 두른 초밥보다 딱 한 단계 더 비싼 것만 골랐다. 마치 다른 것에는 접근금지 푯말이라도 달린 것처럼 일절 손을 뻗지 않았다. 입맛보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 아버지의 배려이자 미안함이었다.
가난은 머뭇거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표를 주의 깊게 읽게 되고, 사소한 기호도 사치처럼 느껴 참게 되며, 필요한 것에도 지갑을 열기 망설여지는 것. 때때로 치료비가 걱정돼 병원 가기를 미루며 통증을 참는 미련함도 감수하는 것이 가난의 습관이다.
돈이 없다고 해서 불해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이 행복의 무시 못 할 훼방꾼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가난은 스며든 주저함만큼 행복을 양보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