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에세이]할머니의 전화번호

by 시골쥐

장례식을 마치고 나면 가족에게는 몇 가지 숙제가 남는다. 가장 망설여지는 것 중 하나는, 고인의 휴대폰을 해지하는 일이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아버지는 한참 동안 할머니 명의의 휴대폰을 간직했다. 보고 싶다고 전화를 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주인도 없는 전화요금을 몇 달이나 냈다.
마음 정리가 쉽지 않을 것이 당연하기에 가족 중 누구도 해지하라 말하지 않았다. 사실 모두가 11자리 전화번호만큼은 할머니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해지 신청을 알려왔다. 미루고 미루던 것을 왜 갑자기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마지막까지 연결돼 있던 매개체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 연유를 물었다.
“할머니가 평생 자기 이름으로 된 게 별로 없었잖아. 기껏해야 통장 하나, 2G 휴대폰 하나지.
전화번호마저 없어지면 할머니가 가진 게 하나도 남지 않아서 두었던 거야. 그거라도 오래 갖게 해주려고.
근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할머니는 이미 다른 세상 사람인데, 여기에 무언갈 남겨두고 싶은 건 오롯이 아빠의 욕심이겠구나. 그래서….”


‘그래서…’, 더 설명할 수 없지만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부사가 우리 대화의 매듭이었다.

얼마 전, 카카오톡 메신저에 새로운 이름이 추가됐다.
‘우리 할머니’. 어떤 이가 할머니 전화번호를 받아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당연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다.
내게도 할머니를 보낼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할머니의 숫자가 아니니까.

며칠간 삭제 화면과 취소 버튼을 오가며 망설이다 오늘에야 연락처에서 이름 한 줄을 지웠다.


용기가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한 줄 마저 남지 않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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