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생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 할 만큼 큰 교통사고를 당해 꼬박 몇 년을 병원에 누워있었다. 거기다 피해 보상금을 사기당하는 바람에 실로 빈곤한 가정이 됐다. 할머니가 공사판 식당을 다니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야 했다.
할아버지는 기구한 삶이 억울했고, 할머니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 마음이 사는 내내 서로를 찔렀다.
IMF가 불어닥친 겨울, 할아버지가 쓰러졌다. 수십 년 전 뇌 수술의 후유증이라고 했다. 당장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라는 말을 끝으로 중환자실 문이 닫혔다. 속절없는 시간이었다.
이튿날 아침, 할머니가 절로 향했다. 법당에서 성치 않은 무릎으로 연신 절을 하며 치성을 드렸다. 넉넉치 못한 살림에 쌀도 몇 포대 올렸던 것 같다.
“할아버지 살려달라고 빌었어?”
일주문을 나서며 내가 물었다.
“네 할아버지 살 수 있다. 수십 년 전에 몇 달 못 살 거라고 했을 때도 일어났어. 지금 의사들은 그때보다 더 잘 고치니까 분명히 살 수 있어.
살아야지. 억울해서 이렇게 가면 안 돼.”
눈물을 잠그기 위해 앙다문 할머니 입술이 결연해 보였다. 아마 오래전 그때에도 이렇게 견뎠을 것이다.
며칠 뒤, 놀랍게도 할아버지 상태가 호전됐다. 또 며칠 뒤엔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이전 같은 기력과 총기는 없었지만, 가족이 다시 한 집에 모였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향한 할머니의 구박 같은 잔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할아버지도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
헌데 어쩐지 싸우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걱정돼요’와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아주 시끄럽게 표현하고 있었다.
오롯이 미워하는 사이인 줄만 알았는데, 그것 또한 애정이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사랑해야 바라는 게 생기고, 서운한 게 생긴다. 또 그걸 몰라줘 미움이 솟는다. 사랑이 없으면 미움도 없다.
그러고 보면 미움이란, 사랑의 모서리에 불과하다. 조금 뾰족한 사랑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