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에세이]순간의 기쁨들을 따라가라

by 시골쥐

왕가위 감독이 당대 홍콩의 최고 배우들을 모아 제작한 작품이 있었다.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을 모티브로 만든 예술성 높은 영화, <동사서독>이다. 무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감독과 배우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영화를 만들었다. 그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예상보다 <동사서독>의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서 제작비가 부족해진 왕가위는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같은 소설을 모티브로 무협 코미디 영화를 한 편 더 제작했다. 파생작답게 제목도 본편과 비슷한 <동성서취>로 지었다.

별도의 제작 기간 없이 <동사서독> 촬영이 없는 날마다 <동성서취>를 촬영했다. 두 편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거의 같았기 때문에, 쉬는 날 촬영장에 놀러 오는 느낌으로 가볍고 즐겁게 찍었다고 한다.

1993년, 본편보다 한해 먼저 개봉한 <동성서취>는 엄청난 흥행을 거두며 지금까지도 패러디 영화 매니아 사이에서 손에 꼽는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반면, 1994년 개봉한 본편 <동사서독>은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과 본편의 도구일 뿐이던 파생작의 영광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어떤 명작은 간절함을 쏟은 작가 손에서 만들어지고, 어떤 명작은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인터넷에 재미로 올리던 작가 손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한 작가가 두 상황에서 모두 명작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사는 길은 여러 가지고 그 길 끝의 영광은 예측할 수 없는 거니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보다 흰 종이에 문장을 채워가는 즐거움과 한 편, 한 편의 마침표가 주는 성취감을 즐기며 살라고. 그렇게 매 순간의 기쁨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이 뒤따를 거라고.

여기까지가 글 쓰는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한 내게 오랜 친구 Y가 보내준 응원의 메시지다.
덕분에 일이 된 글쓰기에서 즐거움을 잃지 않고 있다. 덕분에 이렇게 멋진 이야기로 한 페이지를 채운다.
이 정도면 글은 Y가 써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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