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동생이 나의 마흔을 놀렸다. 나이를 세는 법이 바뀌면서 잠시 미룰 수 있었지만, 40번째 생일이 되며 부정할 수 없는 불혹이 됐다. 당일 자정, 40이라는 사진과 함께 축하 메시지가 도착했다. 문장 끝에는 ‘ㅋㅋㅋ’이 있었다.
서른이 되었을 때도 똑같은 놀림을 받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평생 그를 이길 수 없다. 세월은 역전이 불가능하니까.
서른에는 좀 긁혔다. 평생 간직하고 싶었던 나이 앞자리를 하룻밤 사이에 강탈당했다. 20대를 잃어버린 나와 다르게 그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게 못내 부럽고 아쉬워서 심통이 솟았다.
하지만 마흔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40대가 되니 기분이 어때? 라는 물음에 좋다고 답장을 보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좋았다.
어린 학생을 보며 교복 입을 때가 좋다고 말한다. 대학생을 보면 또 그때가 좋다고 한다. 그처럼 푸르고 싱그러울 때가 없다고. 결혼한 후에는 솔로의 자유로움을 예찬하고 아이를 낳고선 신혼의 낭만을 그리워한다. 아이가 크고 난 후에는 아기였던 아이와 함께한 시절을 추억한다. 웅얼대는 ‘엄마’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대단한 포상을 받은 것처럼 환호하던 때.
돌이켜보면 어느 한때 좋지 않은 시절이 없었다. 그때는 그때마다의 과제를 풀어내느라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 다 좋은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세월을 섭취하는 수동태라면, ‘나이가 든다’는 건 그것을 양분 삼아 자라는 능동태다. 누군가 나이와 성숙의 상관관계를 묻는다면 나는 그리 답할 것이다.
지나온 시절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지금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은 때라는 걸 아는 것. 연령란에 적어내는 숫자가 늘어나는 게 서럽기만 하지 않은 것. 그저, 이전과 다른 좋은 때를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 살아가는 매 순간, 모든 날이 지지 않는 화양연화임을 깨닫는 것.
나이 듦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