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본불매 운동이 일어났을 때, A의 인스타그램은 가지도 않고 사지도 않겠다는 슬로건으로 도배었됐다. 그리고 몇 년 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 여행이 유행했을 때, A의 계정은 일본 관광지 사진으로 가득했다. 교토의 가모 강변을 마음의 고향이라며 추억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주말마다 근사한 카페에 앉아 근사해 보이는 제목의 책을 찍어 올린다. 하지만 절반도 읽지 않고 또 다른 책을 주문한다. 근사한 책이 나오는 속도가 책을 읽는 속도보다 빠르다.
한 달에 한 번은 캠핑 장비를 챙겨 떠난다. 밀키트를 조리해 접시에 담고 하이볼 한 잔을 옆에 놓는다.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색감 보정까지 거쳐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허탈함이 밀려온다. 먼 거리를 달려 텐트를 치고 음식을 만든 정성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우리나라 선수가 속한 유럽 축구팀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잠을 포기한다. 경기 시작 화면을 찍어 ‘두근두근’이라는 문구와 함께 스토리로 올린다. 하지만 사실 A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올해부터는 프로야구도 챙겨야 한다. 늘 상 꼴찌만 하던 팀이 1위를 하고 있어 인기가 많다. 그런 일에 자신이 빠질 수 없다.
동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기사를 공유한다. ‘인간이 미안해ㅠㅠ’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인터넷 창을 켠다. 바람이 차가워졌으니 겨울자켓을 주문해야 한다. 거위 털을 뜯어 채우고 라쿤 털을 두른 모자가 있는 패딩이다.
A의 인스타그램은 온통 하이라이트뿐이다. 시대와 세대의 관심사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A가 좋아하는 건 하나도 없다. 주말 아침 포근한 이불 속에 숨어 유튜브를 보는 것처럼 소소하고 소탈한 것들이다. 그런 건 Chill 하거나 Hip하지 않고, 갬성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맞춰 사느라 A는 여러 모양으로 산다. 겉모양 바꾸기에 바빠 속은 채우지 못하고 산다. 열심히 사는데, 매일 빈 껍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