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보다 너무 많은 것이 떠오를 때가 글을 쓰기 어렵다. 셀 수 없이 뻗는 생각의 가지가 유기적으로 문장을 잇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텅 빈 머릿속에서 한 가닥을 잡아 살을 붙여 키우는 일이 되레 쉽다.
내가 그렇다 하니 A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가 좋아하는 요리에 비유해 설명해 주었다.
“식료가 가득 찬 냉장고를 열면 선뜻 어떤 요리를 만들겠다 결심하기 어렵지. 그런데 김치 하나 달랑 있으면 오히려 쉽잖아. 볶음밥을 하든, 참치 통조림을 사서 찌개를 끓이든.”
그제야 이해했단 얼굴을 한 A가 다시 갸웃거렸다.
“근데 그건 요리 실력이 부족해서 아니야? 냉부해(냉장고를 부탁해) 나오는 셰프들은 안 그렇던데?”
약이 올랐지만, 틀린 말도 아니어서 반박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공을 쳤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백지만 남았다. 손으로 썼다면 지운 자국이라도 남았을 텐데, 컴퓨터 화면엔 노력했던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깜빡이는 커서가 어서 문장을 입력하길 재촉할 뿐이었다. 공허함과 무력함이 쏟아졌다. 와중에도 떠오르는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한참 동안 머리를 싸매다 결국 노트북을 정리해 벽장에 넣어버렸다. TV에 빠져있던 아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심각한 오해를 산 것 같다.
“왜? 나랑 놀아주려고? 나 자전거 타고 싶은데.”
아닌데, 아니라고 하면 실망할 것 같아서 그렇다 하고 나갔다. 봄에 네 발 자전거를 샀는데 장마와 폭염 때문에 여름 끝자락까지 몇 번 타지 못했다.
하천을 따라 깔린 데크에 자전거를 올려놓았다. 아이는 두 달 사이에 훌쩍 자라서 페달에 발이 넉넉히 다였다. 곁에서 잡아주며 한 바퀴 돌 생각으로 나왔는데, 뛰지 않으면 쫓아가질 못했다. 원치 않는 러닝을 했다. 보기만 할 땐 더없이 만족스럽던 산책로가 필요 이상으로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다리에 기운이 빠져 더 뛰지 못할 즈음,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아이를 유혹해 집으로 데려왔다. 쌍쌍바를 정확히 반 갈라 나눠 먹고 거실 바닥에 누워 밤잠 같은 낮잠을 잤다. 그리고 그날 밤, 꽤 괜찮은 한 편을 써냈다.
《태도의 언어》라는 책에서 ‘우물에 물 고이는 시간’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옛 시골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바닥이 다 드러나도록 우물 속을 퍼내고 뚜껑을 덮어두었다고 한다. 그래야 계속해서 맑은 물을 먹을 수 있었다고.
양질의 글을 써내겠단 욕심에 한동안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았다. 모두 다 훌륭한 재료가 될 것들이지만, 정돈해서 보관하지 못했다. 맥락 없이 쌓아 두기만 한 소재들이 무너져 나를 덮쳤다. 나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생각을 다 퍼낼 만큼 달린 후에 눈꺼풀을 덮고 기다렸다. 얼마 만에 깊은 잠을 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맑은 물이 차올랐다. 한 바가지 퍼 올려 밤늦도록 문장을 지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 목소리에 눈을 떴다. 늦게 잠들었지만 개운했다. 하얀 화면을 까맣게 채운 날은 피곤도 잊는다.
덥지 않은 날씨에 기분이 상쾌했다. 적당히 구름 낀 날은 글쓰기 좋은 날씨다. 창밖을 보며 “오늘 날씨 좋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아이가 물었다.
“날씨 좋으면 오늘도 자전거 탈 수 있겠네?”
또 괜한 오해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