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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Jan 25. 2024

침대축구는 정말 나쁜 걸까?

떳떳한 과정과 득이 되는 결과 사이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축구경기가 있었던 다음날, 아침부터 사무실이 시끄러웠다. 졸전 끝에 무승부를 기록했던 경기 얘기였다. 감독의 전술부재와 선수들의 부상 등 부진에 대한 원인분석이 이어졌다. 그러다 상대편 골키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기고 있다고 시간을 너무 끌어. 후반전 시작부터 틈만 나면 다친  누워있더라니까. 그렇게 이기면 좋을까?"

맞는 말이다. 요르단은 한국에서 1골 앞선 채 후반전을 시작했고, 경기종료 직전 동점골이 터지기 전까지 이기고 있었기 때문에 급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잔디에 드러누워 시간을 끌었다. 그날의 경기는 그나마 봐줄 만한 수준이었다. 어떤 경기에서는 경기 내내 선수들이 누워있는 장면만 보기도 했었다. 중동의 축구문화가 유독 더 그런 것 같다. 오죽하면 '중동의 침대축구'라는 말이 있을까.


침대축구는 정말 나쁜 걸까. 달리고 공을 차고 골을 넣는 본연의 목적과는 다르지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기대했던 관중들이 조금 실망하겠지만, 어쨌든 이길 수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어떤 관중들은 그렇게라도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걸 더 좋아하지 않을까? 정의로운 패배보다 비신사적인 승리에 더 환호하는 것은 아닐까?


회사에서 가장 치사한 일이 벌어지는 때라면 역시 승진이다. 소수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다수,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같은 편끼리의 전쟁. 이것 때문에 1년 내내 실적도 쌓고 성과도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나마 노력과 노력이 맞붙는 선의의 경쟁이라면 다행인데, 때로는 부적절한 방법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상대방의 노력을 방해하거나, 성과를 폄하하거나, 안 좋은 소문으로 음해하거나, 소위 '라인'이라 부르는 회사 내 파벌을 동원해 짓누르거나 하는 일들이다. 그것이 본연의 목적과는 다른 플레이지만, 득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에서는 '어떻게 이기는가?'보다 '그래서 이겼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한 과정이란 낭만에 불과하다.


"어떻게 해야 승진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 승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안 하는 거야"

이 시기만 되면 이 말이 귀에 맴돈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했던 말이다.

일 외의 것으로 승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일하러 온 회사에서 일만 하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그러니까 미련해 보여도 일로 인정받아 보겠다던 선배의 말. 높은 사람들 비위 맞추고, 술도 한 잔 하고, 엄살 부리며 어필할 시간에 조금 더 나은 일을 해보겠다던 의지였다.

비록, 매번 승진에서 미끄러지고 있지만, 매년 패배라는 성적표를 받고 돌아오지만 나는 그가 싫지 않다. 그런 낭만이라도 있어야 삭만 한 회사에서 숨이라도 트지 않겠는가.


침대축구는 나쁜 걸까?

아니다. 나쁜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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