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전화벨에는 불안이 묻어 있다
떨쳐낼 수 없는 족쇄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스마트워치에 진동이 느껴졌다. 연달아 울리는 걸 보니 전화다. 팀장이다. 이런 젠장!
이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진다. 받을까? 아니, 받지 말까?, 혹시 내가 실수한 일이 있나? 찰나의 순간, 수만 가지 고민이 스친 끝에 전화를 받았다. 일단 전화가 온이상 언제라도 콜백을 해야 하니까, 차라리 지금 통화를 끝내는 게 낫다. 무엇보다 전화를 받지 않고 나서의 불안감이 더 싫다.
"퇴근했는데 미안해. 그 자료를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흔한 케이스다. 집에 도착해서 자료를 찾아 보냈다. 보안 때문에 회사시스템에 접속하는 절차가 번거롭지만 빨리 끝내고 내 시간을 갖고 싶었다. 오늘 저녁을 즐기려고 치킨도 주문했고, 맥주도 샀고, 넷플릭스도 아껴두었다. 몇 차례 통화를 더 하고, 몇 개의 자료를 더 보낸 후에 끝이 났다. 9시 30분. 나는 야근도 퇴근도 아닌 저녁을 보냈다. 집에 있지만 직장동료와 함께 말이다.
직장인의 전화벨에는 불안함이 묻어 있다. 퇴근 후에 혹은 주말에 울리는 전화벨은 대게 나를 다시 회사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휴대폰 너머로 업무 이야기가 오가고 나면 몸은 밖에 있지만 생각이 회사로 간다. 쉬고 있지만 쉬는 것이 아니게 된다.
몇 년 전 건강검진을 가던 날, 아침부터 전화가 쏟아졌다. 갑작스레 터진 일 때문에 데이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잘 정리해서 웹하드에 올려놓았지만, 그런 순간에는 대신 일을 처리해 주는 사람이 잘 없다. 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차례 전화를 받다 못해 내시경을 취소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겠냐마는 마음이 불안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직장인에게 핸드폰이 족쇄가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오죽하면 퇴근 후 단톡방 금지법을 시행하자는 얘기도 있었다. 메신저도 그렇게나 싫은데 개인적으로 대화가 오가는 전화야 오죽할까. 나는 전화를 받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회사동료들의 벨소리를 따로 지정했다. 로이킴이 부른 <잘 지내자, 우리>라는 노래다.
"언제쯤 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팀장이 되면 괜찮은가요?"
팀장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그렇단다. 팀장이 되고 나서도 윗사람이 너무 많아서, 심지어 임원에게도 전화가 오기 때문에 나보다 더 불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말없이 담배를 태웠다. 아니 사실은 한 모금 넘긴 담배연기를 뱉으며 긴 한숨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