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리 하고 일하면서 강대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 줄 알았어. 그리고 좋은 사람과 일하니까 일이 재밌더라.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 줘>에 나오는 대사다. 열정 많고 능력있지만 상사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며 만년 대리 신세였던 양주란은 과거로 돌아온인생 2회 차 강지원의 도움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못내 빛을 보지 못한 강지원의 노력들이 미안했던 양주란의 고백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의 대화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이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 좋은 사람과 즐겁게 '일만'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무능한 상사와 일하는 것, 게으른 후배와 일하는 것, 얌체 같은 동기와 일하는 경우는 낙첨된 복권과 같다. 너무 흔한 실패라서, 거지같은 상황임에도 타격감조차 미미하다. 안타깝게도 회사에는 잘하려는 사람보단 적게 일하려는 사람이 많고, 제대로 일하려는 사람보단 문제 되지 않도록 일하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십 수년을 출근하다 보니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지도 못하게 됐다. 나는 심지 굳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좋은 사람과 일했던 때가 있었다.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노력하는 사람. 내게 그만한 깜냥이 없어 그의 능력이 얼마 큼인지 정의할 수 없었지만, 본받고 싶은 모습의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까지 본받고 싶진 않았다. 그처럼 살아가려면 너무 많이 견뎌야 하고, 너무 많이 짊어져야 하고, 너무 많이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나도 마음속에서 자라던 심지를 주물렀다. 굳세지지 않도록, 흐물거리게 물러지도록.
얼마 전 그 사람이 회사를 떠났다.
물어야 할 것 같아 왜냐고 물었다.
"회사에 일하러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꼴 보기 싫었는데, 몇 년 전부터 그 사람들 마음이 이해 가기 시작하더라. 그리고 그렇지 않던 선배들이, 동기들이 내가 꼴불견이라 생각하던 사람들처럼 변해가는 모습이 보이더라.
'이렇게 차례차례 물들다 보면 이제 곧 내 차례가 오겠구나. 나도 내가 싫어하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겠구나' 생각하니까 결정하게 되더라고.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