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파편

이 이야기는 현수를 위해서 쓴다.

삶의 파편들

by 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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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나는 피부가 예민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특히 고등학생 때는 두피염으로 엄청 고생을 했는데 이게 뭐냐면 머리 밑에 왕뾰루지 같은 게 생겨서

땡땡한 물집처럼 잡혀서는 아프고 간지럽고 시간 지나면 딱지 앉고 못 참고 긁어서 때면 피나고

뭐 그런 고통을 안겨주는 질병


지금 쓰려는 이야기는 두피염으로 지독히도 고생하던 고등학생 당시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온가족이 가장 힘들었던 당시의 이야기


내가 고등학생이던 2004~2005년쯤에는 샤기컷이 엄청나게 유행했다.

이런 샤기컷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왁스가 꼭 필요했고

다들 왁스 한통은 몰래몰래 가방에 넣어 다녔다.

그리고 수업이 마치면 다들 거울 앞에 우르르 몰려가서 주변 여고생들에게

우리의 멋을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해서 왁스를 열심히 바르고 교문을 나섰다.

그러니까 나 같은 경우는 금정고 옆에 있는 학산여고 혜화여고 대명여고 이런 애들에게 잘 보이려고

머리가 잘 된 날은 왠지 더 들떠서 여자애들이 많은 곳을 아이들과 배회했던 것 같다.


매일 발라대던 왁스 탓인지 몰라도 두피염이 점점 더 심해짐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왁스를 한통사왔다. 집 앞 미용실 아줌마가 내 머리 잘라주면서 보니 두피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좋은 왁스 써야 할 거 같다고 추천해줘서 사 왔다고 했다.

원래 내가 쓰던 왁스보다 2만 원 정도 더 비싼, 영어가 잔뜩 적힌 미용실 왁스.


왁스통을 바라보니 며칠 전에 엄마가 슈퍼마켓에서 생리대를 낱개로 사는 모습이 떠올랐다.


고급 왁스를 쓰는 아들을 가진 생리대를 낱개로 쓰는 엄마라니.

매치되었을 때 서로에게 너무 가혹한 물건들.

가난은 사랑을 가혹하게 만드는구나 생각을 하며 가방 속에

엄마가 단박에 사온 비싼 왁스를 집어넣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왕따를 하거나 누군가를 괴롭힌 적도 없었지만

나는 단지 머리가 좀 길고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불량학생으로 분류되었기에

교문에서 학생주임을 마주치면 거의 매번 가방검사를 당했다.

학주는 마치 내 가방에 담배나 라이터 혹은 본드, 대마초, 코카인이

꼭 나오길 바라는 마약탐지견 마냥 헥헥대며 매일매일 검사를 했다.


그래서 그 꼴이 보기 싫기도 하고 고3 때는 공부에 미쳐있기도 했고 해서

[이것도 나름의 동기부여가 되는 사건이 있어서 그런 건데 그건 다음에 쓰도록 하고]

전교에서 제일 먼저 등교를 했다.

선생님들도 안 나오는 시간에 버스 첫차를 타고 등교해서 혼자 교실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그렇게 노력하면 반드시 그만큼의 성과를 얻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뭐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거지만 노력과 성과는 큰 관련이 없다.

어떤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할 때는

그 분야에 대한 재능과 그것을 지원해줄 배경 그리고 적당한 운 이 갖추어져 있을 때다.

저런 것들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과도한 노력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독이지.


어쨌든 언제나처럼 1등으로 등교해서 4층의 교실로 공부를 하러 걸어올라 가는데

2층 교무실 계단 앞에서 학주를 마주쳤다.

인사하고 그냥 빨리 지나가려는데 또 내 가방을 낚아채더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왁스통을 잡아들고는 뭐하나 잡았다는 듯이 신난 표정으로

" 이 딴 거나 머리에 처바르고 새끼가 공부는 안 하고 멋만 부리고"라는

진부한 악역 선생의 대사를 뱉으면서 내 머리통을 왁스통으로 한번 내려쳤다.

내가 저 반에서 2~3등 하는데요, 선생님 학교 다닐 때 보다 내가 더 잘하는데 무슨 헛소리하냐고

무표정하게 대답하니 대든다고 왁스통으로 또 머리를 내려쳤다.

그 순간 왁스통 뚜껑이 깨져서 반쪽이 나고 왁스가 절반 정도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그때 내 순수이성이 내 귀에 속삭였다.

저 새끼도 똑같이 깨버리자고. 그러나 제 부모에게 배운 바 있으나 본 바가 없어

인간존중을 실천하지 못하는 저 나이만 먹은 선생놈과 달리

나는 부모님께 배우고 본 대로 인간존중의 한 요소인 용서를 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의 윗사람이라는 자리가 주는 오만함과 거만함 ,

선생질이라는 고인물성향의 직업군에서 오는 정신적 도태를 용서하는대신

부서진 왁스통을 손에 주워 들고 벽에 몇 번을 때려 박아서 왁스통을 산산조각 냈다.

플라스틱 파편이 튀고 살색의 내용물이 넘쳐흘렀다.

내 눈에 그것은 어떤 살아있는 생명체의 살점과 뼈가 부서져 튀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내 눈앞의 사람의 것이었으면 좋겠건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왁스통을 벽에 으깨버리고 덤덤하게 교실로 다시 올라가니 학주가 뒤에서 싸이코 새끼라고 소리를 질렀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삼촌이 네 생활비로 쓰라고

매달 20만 원씩 보내주시기로 했다는 말을 하며 20만 원을 꺼내놓으셨다.

이걸로 밀린 급식비나 책값들 쓰면 될 거라고.

집안이 힘들어도 나는 부족한 것 없이 학교생활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며

삼촌이 말도 없이 그냥 입금해주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엄마가 정말 정말 미안한데 이 돈 한동안만 생활비로 쓰면 안 되냐고 이야기했고

나는 아무 생각 없는 척 뭐 그렇게 해 라고 말하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사실 그날 집으로 오는 길 내내 엄마의 생리대 낱개들과 깨진 왁스통이 사진처럼 머리 위를 맴돌아서

용서했다고 말해놓고서는

머릿속으로 학주를 왁스통처럼 부수는 상상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진짜 그렇게 해버리려고 계획까지 치밀하게 세우고 있었는데

삼촌이 보내준 20만 원 덕에 어느 정도 분노가 풀릴 수 있었다.


저 돈이면 그래도 생필품에 대한 부족은 겪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


우리 가족만 산소부족 국가 거주민마냥 너무 헉헉거리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풀렸다.


만약 그 20만 원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내가 사고 안치고 고등학교나 졸업할 수 있었을까.

멀쩡히 대학교를 다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줄 수 있었을까.

우리 가족이 계속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을까.


삼촌은 내가 자라오는 내내 고마운 사람이고 존경하는 사람이다.

나는 가족이 있는 남자가 무엇인가를 선뜻 주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다.

난 언제나 그 20만 원의 크기를 마음속에 품어두고 산다.


내가 저 이야기를 꺼낼 때면 엄마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삼촌이 너에게 좋은 사람으로 늘 기억될 수 있는 건 숙모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이 이야기는 내 사촌동생 현수를 위해 쓴다.

현수의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현수가 꼭 알았으면 싶어서 쓴다.



매거진 "파편" 은 나의 삶을 깨뜨리거나 파괴했던

혹은 나의 삶에 날아와 부딪히거나 스쳐 지나가버린

많은 사건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사건과 사람들이 흘리고 간 파편들

혹은 그로 인해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을 하나씩 글로 기록해둡니다.

이 과정은 하나의 나에 대한 조각모음입니다.


박가람

https://www.instagram.com/seeinmymin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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