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편들
지금 쓸 이야기는 아마 나의 부모님이 나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 이야기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학급폭력과 왕따 등의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학교였다.
극빈층들과 깡패 양아치들이 많이 살았던 동네여서 동네에서 사건사고도 많았고
그런 사람들을 부모로 둔 즉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거기다가 학교는 레슬링부를 육성하는 게 목표라 반마다 운동부 아이들이 4~5명씩 있었고
자연스럽게 운동부 아이들이 반의 왕처럼 군림하는 시스템을 가진 학교
어차피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할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난 선생님을 안 좋아한다.
내가 나쁜 학생이라서 좋은 선생님을 못 만났을 수도 있지만
난 단 한 번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이 이야기는 내가 선생들을 싫어하게 된 사건들 중에 하나이자
내 부모가 나의 학교생활을 절대적으로 믿어주게 되었던 사건.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
나는 어릴 적부터 축구를 해서 운동하는 아이들과 친분이 있었고 또 나의 사촌형은 레슬링부의 주장,
그냥 나는 건드리기 껄끄러운 상대였다.
서로서로 못 본 척하는 그런 관계.
그로 인해 중학생 때의 나는 항상 내적인 괴로움을 품고 살았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학급폭력들과
비열한 괴롭힘 들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그 마음.
비인간적으로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을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레슬링이라는 운동을 하는 아이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이 좋다.
더불어서 내가 만약 한 명을 두들겨 팬다 쳐도 그 뒷일은 내가 감당할 수가 없는 수준.
이미 중학교 1학년 첫날 매점에서 애들 라면 뺐어먹는 2학년 양아치를 보고
그 양아치 머리에 내가 먹고 있던 라면을 부은 다음
이거 드세요 라고 말한 뒤 동전을 바닥에 던지면서 음료수도 드세요 하면서 허세 부린 뒤에
맞아 죽을뻔한 적이 있어서 덤비기가 솔직히 무섭기도 했다.
그때 수업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교문 앞에 나를 스무 명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담을 잘 넘기 시작했다. 닌자력 상승!
눈앞에서의 악행을 보고 모른척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한편으로는 나는 아무도 못 건드리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 비겁한 안도감
이 두 가지는 중학생 내내 내가 남자들로 가득 찬 쇠 비린내 나는 교실로 들어갈 때마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교실의 향기를 맡으면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이때쯤부터 학교엔 남선생과 여선생의 비율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다.
여자 선생님들은 내가 볼 때 자기들도 무서웠던 것 같다.
아니면 귀찮았거나.
그래서 늘 알면서도 모르는 척 비겁하게 방관하고..
지금 내가 어른이 돼서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일진이나 운동부애들이 다른 학생들 때리고 괴롭히고 돈 뜯고 그러는 거
학교 선생님들이 모를 수가 없다.
눈치만 봐도 다 알 수가 있는데 모른척했던 거지.
나는 사람 치아가 빠지면 그렇게 큰지 싸우다가 벽에 얼굴 찧고
치아가 통째로 뽑힌 아이를 보고 알았다.
신경이 주렁주렁 달려서 빠져나온 커다란 치아들
입술이 잘리면 피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도 중학생 때 알았다.
싸우다가 한 명이 미쳐서 커터칼로 얼굴을 그었는데
입술 부분이 반쪽 났는데 피가 진짜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생각해보면 어린 여선생들이 벌벌 떨만한 비주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의 방관을 이해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게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이해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기분.
어쨌든 수많은 선생님들의 비겁한 방관 속에서
꾸준히 학급폭력이 자행되던 나의 중학교 3학년 가을
우리 반에는 빵빵이라는
[혹시나 내가 슈퍼 유명인사가 돼서 개인 프라이버시에 침해를 줄까 봐 대충 이름을 바꿈]
작고 통통하고 하얀 누가 봐도 괴롭히고 싶은 그런 아이가 있었다.
빵빵이는 편부모 가정의 아들로 엄마와 동생 한 명 이렇게 셋이서 우리 집 위의 아파트에 살았는데
빵빵이의 동생은 몸과 마음이 조금 불편한 아이여서 지나가다 보면 늘 휠체어를 어머니께서 밀어주고 계셨고
그 덕에 나는 가끔 휠체어를 밀고 지나가는 뒷모습을 보면 빵빵이 어머니인걸 알고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실제로 나와 빵빵이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A라는 권투를 하는 일진 학생 한 명도 우리 반에 있었고 A와 나는
그냥 서로서로 안 건드리는 그런 남북관계 같은 사이였다.
가끔 신경전이 있긴 했지만.
3학년 첫날 A가 빵빵이 뺨을 때리면서 괴롭히길래
우리 반에서는 그냥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고 서로서로 별일 없이 지냈는데.
언젠가부터 A가 슬슬 빵빵이를 괴롭히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내가 보는 앞에서 빵빵이 뺨을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기가 이 반에서 힘짱 싸움짱 내가 제일 잘나가 이런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와 A의 싸움이 벌어졌고
한 3분가량 서로 우당탕탕 하고 있으니 남자 체육선생님이 달려와서 둘은 잡혀 갔다.
내가 그 3분 동안 느낀 건 권투는 정말 무서운 운동이고
체육선생님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다 라는 점이었지만
남들 눈에는 비슷하게 우당탕탕 해서 나의 자존심은 유지될 수 있었다.
체육선생에게 잡혀서 30대 중반 정도였던 담임선생님께 끌려가니
담임이 긴말 없이 그냥 싸운 놈들 둘 다 똑같다고 똑같은 징계를 줬다.
내가 화나서 나는 선생님이 방관하는 학급폭력 그걸 막으려고 한 건데
당신이 해야 할 일 내가 한 건데 왜 내가 혼나야 하는지 왜 내가 징계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따졌고
선생님에게 대든다고 더 많이 혼나고 A와 같이 일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를 했다.
얼굴에 피멍이 들고 찢어진 교복을 입은 상태로 A와 걸레질을 하면서
"빵빵이 괴롭히지 마라 불쌍하지도 않나."
이 말을 멋스럽게 하고 또 우당탕할까 봐 쫄아서 밀대 걸레를 손으로 꼭 쥐고 있는데
생각보다 덤덤하게 A가 "알겠다."하고 별말 없이 있었고 나는 속으로 "휴 다행"을 외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피멍 든 내 얼굴을 보고 왜 이러냐고 물었고
나는 별말 안 했다. 아빠는 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맞아 온 거 보니 누구 괴롭힌 건 아니네 라고 말했다.
그렇게 저녁식사 시간이 됐을 무렵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고 집 앞에 나가 보니 빵빵이와 빵빵이 어머니
그리고 빵빵이 동생이 피자를 사들고 집 앞에 찾아와 있었다.
빵빵이가 고맙다고 말하면서 피자를 줬다.
빵빵이 어머니도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울먹거리셨다.
빵빵이 동생은 그게 어떤 분위긴지도 모른 체 박수만 짝짝 치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이런 거 안 사주셔도 괜찮은데 잘 먹을게요."라는 상투적인 인사를 하고
피자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날 피자를 먹는데 나는 아빠가 그렇게 즐거워하는걸 처음 봤다.
그 뭐랄까 들떠있는 듯한 아이 같은 즐거운 모습
엄마는 내 얼굴에 피멍이 사라질 때까지 친구들한테 그 피자 자랑을 했다.
그리고 다니던 학원에 그 이야기가 퍼져서 여자친구도 생겼다.
1 피멍 = 1여자친구 + 1피자 + 1부모님의 즐거움
피멍 하나로 굉장히 남는 장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슈퍼히어로들이 왜 처맞고 얻어터지면서 돈 한 푼 안 남는 그 짓을 하는지 약간은 알 것 같다.
그 정의롭다 혹은 필요한 곳에 힘을 썼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한 뽕이다.
폭발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런 일에는.
생각해보면 학생이니까 가능했던 일.
사회에 나와보니 정말 힘들다. 학생일 때는 주먹 한번 뻗으면 되었던 일이
사회에서는 극도로 복잡하고 힘들다.
가끔씩 사회는 매우 복잡하고 교묘해진 교실의 확장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 속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면 남교실의 쇠 냄새가 비릿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도 내가 비겁 해질 것 같은 순간에는 피멍이 있었던 입술 윗부분을 슬쩍 만져본다.
그곳에는 내가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버튼이 있다.
가끔 내가 이런 이야기 하면서 뭘 하든 이득을 위해서 비겁해지면 안 된다고 말하면
네가 현실을 모른다고 그렇게 살면 밥도 못 먹고 산다고
그러니까 네가 나이만 먹고 아직 어린 앤 거지 ㅉ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말도 맞다. 이것이 나의 젊음의 비결이다 병신들아.
매거진 "파편" 은 나의 삶을 깨뜨리거나 파괴했던
혹은 나의 삶에 날아와 부딪히거나 스쳐 지나가버린
많은 사건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사건과 사람들이 흘리고 간 파편들
혹은 그로 인해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을 하나씩 글로 기록해둡니다.
이 과정은 하나의 나에 대한 조각모음입니다.
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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