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파편

약점뒤의 약점뒤의 약점뒤의 약점뒤의

삶의 파편들

by 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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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남자가 군대를 안 가고 서른까지 놀고먹으면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걸 다해보다 보면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성되고 나는 그걸 이성과의 대화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에피소드가 태어날 때마다 한 마리씩 포획해서 머릿속에 많이 박제해두었다.

이것은 박제된 기억의 군집들로부터 끌어온 깨우침 중에 하나.


나는 군대를 안 갔다.

안 갔다? 라기보단 못 갔다. 또 어떻게 보면 못 갔다? 라기보단 안 갔다.

아픈 거 숨겼으면 갈 수도 있긴 했으니까. 눈에 띄는 질병이 아니라서.


남자들이라면 알겠지만 신검에서 5급이 뜬다는 건 건강에 치명타를 맞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아니면 뭐 핵 금수저던가.


나 같은 경우는 자라오는 내내 염증에게 시달렸다.

겉으로 보면 멀쩡하게 생겼는데 입안의 구내염이 유난히 잦았고

피부에도 염증이 잦았는데 특히 안 보이는 부분인 두피나 눈 이런 곳들에 염증들이 자주 왔고

그런 염증들이 잘 치유가 되지 않고 더 번지고 커졌다.


특히 고등학생 때의 어느 날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눈을 떴는데 눈앞에 안개가 가득 껴서

병원에 갔더니 안압이 50을 넘었다고 당장 치료해야 한다고 해서 치료를 받고

이렇게 녹내장이 심하게 반복되면 나중에 실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병원을 나오니 봄이라 그런가 태양이 세상을 뽀송뽀송하고 따듯하게 말려둬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특히 아직 안압이 안 떨어져서 햇빛이 샹들리에에 반사되듯 보이는데

나름 운치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터덜터덜 삼디다스를 끌며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느 남고생마냥 의사가 실명될 수도 있다고 한 이야기를 낄낄대면서 말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엄마에게 암말 없이 평소처럼 라면 한 그릇 하고 잠이 들었다.


여기서 잠깐 너무너무 이 이야기와 상관이 없지만 라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것만 따로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라서.

나는 음식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진짜 계속 먹는데

고3 때는 삼양라면에 김치를 조금 넣어서 끓인 라면에 심취했다.

결코 김치를 많이 넣으면 안 된다. 그냥 약간의 향취를 느끼게 해 줄 정도의 양.

근 1년간을 자기 직전 야식으로 먹었는데 그 덕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70킬로를 넘었다.

지금은 그렇게 만들어도 그 맛이 안 난다. 내가 변해서가 아니라 삼양라면이 변했다.

그러나 그의 변화를 인정한다.

나는 변하는 모든 것을 인정한다. 변하는 것들이 있어서 나는 그립다는 감정을 알 수 있다.

삼양라면이 변해서 나는 그 시절의 라면 향기가 그립다. 정말로 아직도 그때의 라면 향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코끝으로 그 시절의 라면 향기를 느끼면

매일같이 그걸 끓여주던 엄마의 피곤한 뒷모습과

아픈 몸으로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하던 아빠의 모습도 다 떠오른다.

세상의 사포 같은 뺨 사이에서 잔인하게 부벼지던 시절이었지만 지나가고 변했기에 아주 그립다.

쓰다 보니 또 기승전 눈물샘 자극 같지만, 그냥 그렇다. 아주 그립다.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라면을 먹고 다음날 일어나서 친구와 같이 등교를 하러 집 앞을 나서는데

집 앞에 찾아온 친구가 내 눈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아무리 봐도 눈알이 이상하다고

나는 멀쩡하다 느꼈는데,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한 것 같다고 학교 가지말고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좀 큰 안과를 찾아갔더니 안압이 너무 높다며 급하게 눈알에 주사를 맞고 약도 여러 개 넣었다.

그 뒤로 안압이 안 떨어지면 안압을 떨어뜨리는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별수 없이 엄마를 불렀다.

일하다가 놀라서 달려온 엄마를 보니 마음이 좀 그랬다.

왜 등신같이 아파서 안 그래도 힘든 가족들을 괴롭힐까 생각하며 수시간 뒤 다시 안압을 쟀다.

다행히도 약이 잘 들어서 안압이 정상수치로 떨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면담 과정에서 이런 식으로 안압이 너무 크게 오르는 경우가 반복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또 했다.


집에 돌아와서 좀 쉬려고 방의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만약 진짜 앞을 못 보면 이런 기분인건가 싶어서 벌떡 일어나서 손을 휘휘 저으면서 걸어봤다.

그제야 좀 무서웠다. 진짜 눈앞에 검은색만 칠해진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공포감이

폐쇄공포증의 형태로 몰려왔다.

불 꺼진 방이 까만색으로 너무 가득 차 있어서 그 틈에 끼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불을 키고 잠을 잤다.

그 뒤로 꽤 오래도록 불을 키고 잠을 자는 버릇이 생겼고

나는 태양광이나 불빛의 유무와 상관없이 언제나 잘 자는 능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서 저런 병자 스펙을 보유한 상태로 병무청 신검에 참여했다.

내 눈에 관한 이력과 다양한 염증에 관한 병원 이력서를 군의관에게 제출하니 7급 재검이 떴다.

군의관은 보통 이렇게 다양한 부위에서 염증이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에 베체트병일 확률이 있다며

큰 병원에서 자세히 검사받고 다시 찾아오라고 예상외로 친절하게 알려줬다.

원래 군의관들이 진짜 무성의한 태도로 검사하는 걸로 유명한데 나는 운이 좋았다.


대형병원을 찾아가 유전자 검사부터 피부반응 검사를 다 받은 뒤 그간 치료기록을 참고해서

희귀병인 베체트병 확진을 받고 군대를 안 가게 되었다.

이게 그러니까 자가면역질환인데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겨서 멀쩡한 신체조직을 면역체계가 공격하는 병.


그리고 아마 이때쯤부터 시작해서 스무 살 초중반까지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아팠던 시기인 것 같다.

염증이 점점 더 다양한 부위에서 생겨나기 시작했고, 고통도 계속해서 증가했고

그에 따라먹는 약의 수도 각종 검사의 숫자도 증가했다.

모든 것이 증가하던 시기. 나는 그때 깨달았다. 몸의 고통이 마음의 고통보다 더 강하다는 걸.

마음이 아프면 너무 슬픈데 몸이 아프면 그냥 ㅈ같다.


한참 아플 때는 한 달 내내 극심한 두통을 겪은 적도 있다. 의사는 그게 신경염 때문이라고 말해줬었다.

진짜 머리통을 깨고 아픈 부위를 꺼내서 버리고 싶었던 시기.


이 당시에 나는 약점의 등 뒤에 푹 빠져있었다.

약점의 등 뒤는 너무나도 아늑하다.

현실의 주먹질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넓고 따뜻한 약점의 등 뒤.

그곳은 내가 숨어들기에 딱 좋은 공간이었다.

그곳을 발견해낸 뒤로는 방구석에서만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다가 아프면 진통제 먹고 자버리고를 반복했다.

당시에는 법학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당연히 공부도 안 하고 시험도 치러 나가지 않았다.

나는 아프니까.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니까. 나의 약점들이 내가 하기 싫은 현실의 모든 일들을 방어해줬다.


여자친구는 나와 한동네에 살았는데 매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내가 먹고 싶다고 말한 음식을 사다 주고 갔다. 기운차리라고.

나는 내가 아프니까 나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나는 아프다는 것을 하나의 특권으로 받아들이고 마구 남용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여자친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내 학교생활은 완벽히 망쳐져 있었고 여자친구는 떠났고

친구들은 모두 군대로 떠나고 나만 홀로 툭 남겨져있었다.

아 나만 홀로는 아니고 내가 조금만 아파도 애간장이 녹는 것 같다는 부모님만 남아있었다.

엄마는 내가 연락이 한시간만 갑자기 안 되어도 놀라서 집으로 뛰어 오셨다.

뭐 의사가 말한 것처럼 심장이나 뇌 쪽에 염증이 생겨서 갑자기 문제가 생겼을까 봐.

나는 그냥 퍼질러 자고 있던 건데.

그렇게 인생이 쓰레기 소각장인것마냥 쓰레기 같은 날들을 태워 보내다 보니

현실의 덩치는 점점 커져서 약점 뒤에 숨어있던 나를 압사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불이 철판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지던 날

현실과 맞서 싸우며 내 체급을 계속 키워나가지 않으면 언젠가는 내가 맞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약도 끊었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먹고 병원을 찾아갔다.


머리가 너무 아팠던 하루는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다 충동적으로 학교 뒷산 등산로로 올라가

죽기 직전까지 정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와, 이게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힘드니까 머리가 아프다는 사실도 잊혔다.

더불어서 뭔가 살아있는 기분도 나고 이게 쓰다 보니까 병 극복 수기 같기도 한데 그런 의도는 아니고..

어쨌든 신묘하게 그날 이후로 두통이 끝났다.


그리고 헤어진 여자친구를 다시 찾아가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서 어떤 과로 옮길 거고 어떻게 건강해질 거고

어떻게 너를 행복하게 해줄지 내 계획들을 다 설명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니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자기가 헤어지자고 말했던 이유는 엄마가 점을 봤는데

지금 남자친구랑 계속 만나면 남자가 일찍 죽을 거라고 했다고 둘이 같이 있으면 안 좋다고 해서

처음엔 그 말 안 믿었는데 엄마도 너무 만나지 말라고 그러시고

자기도 내가 점점 아파지니까 무서웠다고 했다. 그래서 도망치듯 헤어지자고 했다고.


그 날 이후로 여자친구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성적이 개판이었던 과 도 나와서 다른 과로 입학했다.

정확히 70~80일 정도 숨 도안 쉬고 공부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과로 옮길 거고 어떻게 건강해질지까지의 약속은 지켰는데

어떻게 행복해지게 해줄지는 지켜주지 못했네, 약속은 2/3 정도를 지켰다.


나는 아직도 가끔 내 약점 뒤로 숨어든다. 나도 모르게.

아 왜 몸에 나쁜 건 다 맛있고

편한 건 다 인생에 나쁜 걸까.

또 이 뽀송하고 안락한 약점의 뒤편은 나를 얼마나 부드럽고 편안한 기분으로 죽여나가는지.

근데 나는 죽기가 싫은걸.

그 어떤 기분보다 살아있다는 기분이 최고다.


약점의 뒤의 약점의 뒤의 약점의 뒤의 약점의 뒤의 약점의 뒤에 내가 숨어있었다.

지금은 약점의 뒤의 약점의 뒤의 약점의 뒤편쯤에서 그것들을 깨부수려고 닥치는 대로 주먹 휘두르고 산다.


그러니까 그냥 보통의 현대인이다.





매거진 "파편" 은 나의 삶을 깨뜨리거나 파괴했던

혹은 나의 삶에 날아와 부딪히거나 스쳐 지나가버린

많은 사건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사건과 사람들이 흘리고 간 파편들

혹은 그로 인해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을 하나씩 글로 기록해둡니다.

이 과정은 하나의 나에 대한 조각모음입니다.


박가람

https://www.instagram.com/seeinmymindd/



James Blake Feat. Chance The Rapper "Life Round Here"


그러니까 네 주변의 삶이자 나의 삶이자 누군가의 삶이자 너의 삶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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