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편들
언젠가 악마가 내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신 또한 자신의 지옥을 가지고 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바로 그의 지옥이다."라고.
그리고 최근에 나는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신은 죽었다.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에 신은 죽고 만 것이다."
그러니 연민의 정이라는 것을 경계하라. 위대한 사랑은 하나같이 연민의 정 이상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나오는 이야기다.
"언젠가 악마가 내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를 나는 참 좋아한다.
나는 신이라는 존재의 모순을 가지고 노는 악마를 좋아한다.
나에게 신은 자연발생적,태초의,설명되지 않는, 두려움에 기반한, 등의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는 존재이고
악마는 그것들을 비웃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 과학적 발견 등으로 느껴지는 존재.
나는 늘 악마가 인간과 좀 더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왼쪽 귀의 악마 오른쪽 귀의 천사라는 글을 쓸 정도로
인간은 천사와 악마가 혼합된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혼합비율이 악마 쪽이 살짝 더 높게 잡혀있다고 본다.
내가 싫어하는 글의 시작방식 중 하나가 권위 있는 누군가의 말을 빌려 시작하는 글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문장이라면 싫어하는 방식의 글도 써나갈 수 있다.
지금부터는 내가 직접들은 "언젠가 악마가 내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류의 이야기를 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내가 꿈에서 자주 보는 악마와의 대화를 이야기로 옮겨쓴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자처하며 저서를 남기지 않고 자신의 사상과 논리를 그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만 했지만
나는 그걸 받아적어 줄 플라톤이 없으니 그냥 여기에 내가 직접 쓴다.
나는 악몽을 자주 꾼다. 다양한 종류의 악몽을 꾸는데
가끔 악마가 나와서 나와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이것은 기억에 남는 악마와의 대화에 대한 기록이다.
일단 나는 결코 미치지 않았고 머리에 뿔도 나지 않았으며 인간을 미워하지 않고 어린이 병원에 기부도 한다.
6월 66일을 기다리지도 않고 6시 66분에 알람을 맞춰두지도 않는다.
그냥 악마와의 대화들 중에 인상 깊은 것들이 몇 개 있어서 기록해 둔다.
첫 번째 꿈
이것은 예전의 글 중 "SNS에는 악마가 산다."라는 글에서도 언급했던 꿈.
험한 산길을 달리는 버스 안에 내가 앉아있다.
창밖으로는 떨어지면 딱 죽기 좋을 정도의 높이의 절벽이 보인다.
오금이 저리는 기분을 느끼며 창문에서 눈을 떼는 순간 버스가 휘청거리며 절벽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버스의 손잡이를 있는 힘껏 움켜쥐는데
시간이 아주 천천히 멈춘 듯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악마가 눈앞에,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나타나서는 이렇게 말했다.
"먼 옛날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질병과 각종 재앙들 수많은 악한 것들이 쏟아져 나올 때
그 상자 안에 희망도 왜 들어있었는지 알아?"
"사실 그것도 악한 거거든."
"어쩌면 그게 제일 나빠 그래서 마지막까지 들어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버스는 추락하고
꿈속에서의 나는 죽음과 동시에
현실 속에서는 살아났다.
꿈속에서 죽을 때마다 나는 현실에서 살아난다.
그때마다 뭔가 부활하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묘하다.
예수는 부활하는 데 사흘이나 걸렸지만. 나는 그만큼 큰사람이 아니라 1초 만에 부활하나 보다.
희망. 나는 희망팔이 장사꾼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희망을 밝은 마음으로 전하고 알려주려는 선한 인간들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그걸 이용해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수준 낮은 약팔이들 마냥.
내가 만약 밑도 끝도 없는 힘내 잘될 거야. 넌 할 수 있어 부류의 글을 쓴다면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1동으로 나를 찾아와서 폭력을 행사해도 좋다.
나는 그런 걸로 사기 치고 장사 안 한다.
희망. 그것은 때로 참 악질적인 존재다.
살다 보면 희망을 강제당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런 순간이 발생하는 곳을 보고 싶다면 대형병원들의 중환자실 앞 의자에 하루만 앉아 있어 보면 된다.
중환자실 앞 의자 밑은 눈물의 최고 경작지다.
나는 그곳만큼 많은 눈물이 수확되는 경작지를 본 적이 없다.
고개를 익은 벼처럼 숙이고
쌀알 같은 눈물을 탈탈 흘리는 사람들.
그것은 내가 본 가장 슬픈 황금 들녘이었다.
저승사자의 낫이 눈물을 서걱서걱 베어가는 곳.
그 순간만은 희망이 참 야속하게 느껴진다.
희망은 꼭 나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속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지만
나는 너무 사랑하게 되어버린 여자 같은 존재다.
언젠가는 반드시 나를 상처입히거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존재.
두 번째 꿈
나는 하수구를 헤엄치는 찢어진 지느러미와 염증난 비늘을 가진 금붕어.
헤엄치는 순간순간마다 고통을 느낀다.
내 겉모습은 금붕어라기보단 퉁퉁 부은 게맛살같이 보일 정도로 파괴되어 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이야기하기를
" 네가 누군가를 위해 생명을 희생한다면 너는 반드시 조금 더 위대한 존재로 환생할 거야."
"저기 저 가시돋힌 철조망 사이로 네 몸을 우겨 넣으며 지나가면 네 고통만큼 누군가의 고통이 덜어진단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가장 고귀한 즐거움이란다."
나는 지체없이 가시철조망 사이로 헤엄쳐서 몸을 던진다.
내 몸이 다 찢겨나가고 내장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진다.
내 금붕어로서의 삶은 그렇게 끝나고
나는 하수구의 쥐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여전히 네 겉모습은 예전처럼 염증난 피부와
피와 진물이 새어 나오는 너덜거리는 귀가 붙어있다.
뭔가 이상한 걸 느끼지만, 얼른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똑같이 가시철조망 사이로 내 몸을 우겨넣는다.
덩치가 조금 더 커진 탓인가. 고통은 이전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녹슨 가시들이 살 속을 불꽃처럼 파고드는 걸 느끼고
또 똑같이 내장이 흘러내리는 걸 느낀다.
나는 하수구의 고양이로 태어난다.
여전히 지긋지긋한 피부병을 겪고 있고
이번에는 백내장까지 걸려 눈앞이 흐릿하다.
여전히 귀에서는 진물이 흐르고 있네.
이번엔 도저히 저 가시철조망 사이로 몸을 우겨넣을 자신이 안 생긴다.
고양이의 덩치로 저곳에 들어가면 진짜 상상도 못할 정도로 괴로울 텐데.
그냥 오른쪽에 있는 다른 하수구 길로 가서 고양이로 살까 잠깐 생각해보다
다시 가시철조망에 몸을 우겨 넣었다.
고통이 제곱수로 커져 나간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아픈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야옹야옹 키야악 밖에 없네.
아기 비명 같은 키야악 소리가 진짜 아기의 울음소리로 바뀌길 빌면서
나를 가시철조망 속에 우겨 넣는다.
내 내장이 또 흘러내린다. 녹슨 가시의 철 냄새와 내 피비린내가 은근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드디어 인간으로 태어났다.
뭔가 좀 잘못된것 같지만, 확실히 인간으로 태어났다.
신나서 하수구 뚜껑을 열고 세상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때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은 염증과 진물로 뒤덮인 피부와 굽은 등 마치 골룸과 같은 형태.
사람들은 나를 혐오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슬슬 피해간다.
아마도 내 겉모습과 그 겉모습에 상응하는 하수구 냄새 때문이겠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끼며 주저 없이 가시철조망으로 다시 뛰어든다.
철조망을 빠져나오기 전에 늘 죽어버렸는데 이번에는 철조망 끝을 빠져나올 때까지 죽지 않고 숨이 붙어있다.
한쪽 눈알이 철조망의 가시에 찔려 한쪽 눈만 보일 때쯤
가시철조망을 뚫고 내 머리가 철조망 건너편으로 빠져나왔다.
철조망 밖에는 예쁜 금붕어가 헤엄치고 귀여운 햄스터들이 쳇바퀴를 굴렸고
털에 윤기가 흐르는 고양이가 사뿐사뿐 걸어 다녔다.
그리고 조각같은 인간들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고통도 잊고 그걸 구경하는 사이 갑자기 처음 만났던 천사가 기괴할 정도로
얼굴을 들이밀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한 것의 희생은 천한 거야. 아무 의미가 없는 거지 사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네가 태어난 하수구에서 이곳으로 발을 들일 순 없어"
"네가 이곳에 발을 디디려면 저 가시철조망을 뚫고 와야 해.
그런데 네가 그걸 뚫고 여기 온다고 해도 너는 살아남을 수가 없어. 지금 죽어가는 것 처럼"
"그리고 만약 네가 여기로 살아서 건너온다고 쳐보자.
너의 혐오스러움을 이곳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니?"
"그냥 하수의 오물을 받아먹고 오수에 헤엄치고 사는 게 너의 태생적 운명이란다."
"나는 그냥 너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던 것 뿐이야. 그게 천사가 하는 일이란다."
나는 그때 진짜 악마를 보았다.
세 번째 꿈
꿈속에서 누군가와 동네 술집에서 술을 한잔 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때 시간은 새벽 3시쯤.
술집 앞 골목은 2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주르륵 늘어선 골목인데 전날 술집 앞 주택에 살던 50대 아줌마가
동네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옥상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해서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때 나와같이 나온 일행이 공포에 의해 확장된 동공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며 입을 크게 벌리고 무음의 괴성을 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주택의 옥상에 두 명의 아줌마가 또 목을 매달고 자살해 있었고
그 자살한 두 명의 아줌마의 표정이 기괴하고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 아줌마들의 얼굴이 카메라 줌 당기듯 내 눈알에 박혀 들어왔다.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었지만. 휴대폰을 집어 들고 112에 전화를 건 다음
다시 아줌마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 본 저 얼굴 저 표정들 지금 내가 느낀 이 공포감과 평생 겪기 힘든 감정들
다 자세히 기억해두자. 글 쓰거나 뭔가를 창작할 때 영감의 요소로 이용하자.
라는 생각을 하며. 그 생각을 하며 아줌마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죽은 아줌마들의 얼굴이 빙글빙글 기괴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서 꿈에서 깬 뒤 휴대폰에 그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급하게 메모해두고 다시 잠들었다.
잠들자 말자 악마가 나타나서 잠든 내 목을 조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 넌 사람이 죽은 모습을 보고도 네 영감의 소재로 사용하려고 했지."
"넌 그렇잖아 뭐든 네가 만들어내는 것들의 요소로 사용할 생각뿐이잖아."
라고 말하며 내 목을 점점 세게 조르는 악마에게 캑캑 대며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이 악마라면 내가 그런 짓을 한 걸 칭찬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말을 들은 악마는 방긋방긋 웃으며 "맞아." 라는 말을 하고
내 목을 놔주고 떠나갔다.
어쨌든 살아남았다.
네 번째 꿈
번화가의 하늘에 내가 떠 있다.
악마가 번화가의 인간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건넨다.
"너의 어머니가 간음하였다."
"너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너는 자식에 의해 죽을 것이다."
"너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
"너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내가 뭐 하는 거냐고 악마에게 물으니 그가 말하길
"모두에게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중이야."
"진실이 가장 인간을 크게 다치게 하거든."
" 그래서 신과 천사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게네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아."
"봐. 진실을 말하지 않는데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어?"
그리고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이렇게 말한다.
" 야 그리고 너는 나야."
생각해보면 모든 꿈에서 악마는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나는 결코 미치지 않았고 머리에 뿔도 나지 않았으며
인간을 미워하지 않고 어린이 병원에 기부도 한다.
6월 66일을 기다리지도 않고 6시 66분에 알람을 맞춰두지도 않는다.
그냥 악마와의 대화들 중에 인상 깊은 것들이 몇 개 있어서 기록해 둔다.
그러니까 악마의 말이 맞다면 나 자신과의 대화를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