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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람 Dec 14. 2017

깨져버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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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은 지갑과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뿐인데 세계를 잃어버린 기분이 났다. 내가 사는 익숙한 도시의 밤엔 늘 보던 건물과 나무들이 서 있었지만 익숙한 인간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대각선으로 힘없이 내리는 빗방울만 내 어깨에 익숙하게 자주 기대 드러누울 뿐이었다. 대각선으로 힘없이 흘러내리는 사랑스러운 긴 머리는, 빗방울보다 더 익숙한 그 긴 머리는 더는 내 어깨에 기대 있지 않았다. 그것은 미쳐 날뛸 정도로 지독한 외로움을 주었고 나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미용실로 달려갔다.

     첫 번째 미용사는 이런 이유로 머리를 자르려고 왔다는 내 말을 듣고는 경멸의 표정을 지으며 다른 미용사를 소개해주었다. 두 번째 미용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 무덤덤하게 어린 여자 조수에게 내 머리를 맡겼다. 그 사람은 고양이 같았다. 빗질부터 가위질 하나하나가 고양이의 발놀림같이 느껴졌다. 고양이의 움직임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차분하게 움직일 때도 뭔가 모를 불안감이 있다. 갑자기 튀어 오를 것 같은. 극도로 차분한 그 손길들이 아주 불안스럽다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쯤 갑자기 그녀가 내 정수리를 쭉 밀어버렸다. 머리가 병신이 된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미친 사람처럼 건물 안을 부수며 특히 거울을 하나씩 깨부수며 가게에서 나왔다. 왜냐면 거울 안에는 병신 같은 머리를 한 병신을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병신들이 있어서, 나는 그게 너무 화가 났다. 내 머리를 밀어버린 그녀가 조롱하는 고양이 마냥 배슬 배슬 웃으면서 말했다. "뭘 그렇게 화를 내요.." 내가 화난 눈길로 쳐다보자 그녀는 솜방망이 같은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쳐보세요, 저를 깨뜨려보세요. 저는 깨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쉴 새 없이 하기 시작했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사람들이 나보고 고양이 같대. 고양이가 되어본 적도 없으면서, 진짜 고양이가 어떤 것인지는 고양이 말고 아무도 몰라. 나를 깨줘. 나는 궁금해. 나는 영혼이고 싶어. 나는 형체가 아니고 싶어. 나를 깨면 뭐가 튀어나올까? 나는 내 영혼이 궁금해. 육체에서 영혼이 비치는 곳은 눈알, 이 충혈된 눈알밖에 없어 눈알 색을 볼 때 내 영혼은 아마 붉은색이겠지? 고양이들 눈을 봐 파란색 노란색.. 붉은색은 없어.. 봐.. 난 고양이 같은 사람이 아니야.. 난.. 그냥 그냥.. 너야. 살짝 피 묻은 너야. 지금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잖아. 내 눈을 너무 많이 바라보다 보면 내 눈에 비치는 건 결국 너뿐이야. 누군가를 너무 많이 본다는 건 상대방에게 갇히는 거야. 나에게 갇히고 싶어? 갇혀줄래? 여기에? 이 육체 안에서 혼자 살 바엔 난 그냥 깨져버릴래. 근데 둘이 산다면.. 난 누구보다 단단해지고 싶을 것 같은데. 지금처럼 깨지고 싶은 게 아니라.. 난 그냥 외로운 거야. 난 고양이 같은 게 아니야... 옹!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몸이 점점 반짝반짝 도자기처럼 윤이 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그녀는 고양이 모양의 도자기 인형이 되어버렸다. 주먹으로 도자기를 깨버렸다. 도자기 안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내 주먹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영혼 같은 건 없구나.. 육체만 있는 거였구나 인간은.. 뭔가 외롭네..


     그날 이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도자기 인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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