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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람 Feb 27. 2018

다면체의 일

아카이빙



나에게는 규칙적 우울이 있다

내 모서리에서 시작되는 이 우울들은

하루를 잠식해 한 면의 우울이 된다

나는 자주 그렇게 구성되는 다면체다

구르는 건 다면체의 일

바다 위에 던져진 파도가 구르듯

삶에 던져진 다면체는 계속해서 구른다

모든 면이 우울인 날은

표정이 하나인 사람 같아서

죽었다는 기분이 든다

표정이 하나인 방법은 그것뿐이니까

그런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면 

나는 모서리로 잠깐 선다

그럴 때면 내 우울의 시작들이 아파오지만

통각은 무감각보다는 생에 가까운 감각이라

내가 죽었다는 생각을 잠시 멈출 수 있다

분명 어떤 작은 일에서 비롯된 조촐한 감정인데

사건은 모서리만큼만 남아버리고

우울감만 가득 증식해 내 한 면을 채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작은 일을 조심한다

딱 모서리만큼의 사건이 내 한 면을 구성한다

오늘도 의도한 적 없는 모서리가 내게서 생겨나고

아, 나는 내 감정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하루는 내 지배를 늘 벗어난다

이런 생각은 허무한 얼음 같아서

삼킬 때마다 하루가 차게 허망하다

하루가 너무 차게 허망하다 규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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