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파편

아빠 이야기

삶의 파편들

by 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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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빠 병간호 때문에 늘 아빠랑 붙어있으니

아빠랑 있었던 일들이 주로 생각난다.

태어나서 딱 한번 아빠에게 주먹으로 맞아서 코피가 난 적이 있다.
그 외에는 단 한 번도 비이성적인 분노나 감정에 의해 체벌당해본 적이 없다.
그때가 정확히 기억난다. 중학생 때 몸 좀 컸다고 반항심에

훈계하는 엄마의 어깨를 밀치지 말자 맞았다.
그리고 아빠가 했던 말도 정확히 기억난다.

"네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런 사람에게 방금 같은 행동을 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게 될 거다."

맞고 화난 듯 씩씩 거리며
내 방문을 쿵 닫으며 들어간 뒤
씩 웃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기분이 좋았다.
나의 아버지가 멋진 사람이라서 기분이 좋았다.
그 뒤로 나는 사랑을 좀 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사랑이라는 감정의 형태가 참 괜찮은 모양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일을 더듬어보니
아빠의 사업이 실패하고 십억이 넘는 빚이 생겼을 때

우리의 생계가 불투명했을 때
평생 사모님으로 살던 엄마가 곧장 파출부, 식모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러 떠났는지 알 것 같다. 자기를 그렇게 사랑해주니까.

옛날이야기 하나 더 생각나네

내가 고등학생 때 엄마가 매일 12시간씩 힘들게 일하는 것을 보며 내가
다른 집은 아빠들이 돈 벌어 오는데 우리 아빠는 몸도 아프고 사업도 망해서
집에만 있고 엄마는 매일 일해야 하는 이런 삶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하니까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평등하려고 아빠랑 결혼해서사는 게 아니야 사랑하려고 결혼해서사는 거지."


나도 꼭 아빠처럼 사랑하고 엄마처럼 받아주는 관계 속에서 가족을 만들고 싶다.
나는 꾸준히 부모님의 관계가 부럽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부럽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그 순간이 영상처럼 떠오르고

그때는 멀쩡했던 마음이 지금은 괜히 울컥하는 느낌이 든다.
그땐 너무 어려서 세상과 그렇게 가까이 살을 맞닿아본 게 처음이라서
그 순간이 힘든 건지 괴로운 건지도 몰랐다.


이제는 나이 먹어 늙어버린 내 부모 피부의 거침이
우리와 살을 맞대고 산 세상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느끼게 해줘서
우리가 어떤 사포 같은 시간에 부대끼며 보냈는지를 느끼게 해줘서

마라톤처럼 달리는 순간에는 몰랐던,
결승 선후의 눈물처럼 마음이 울컥한다.

곧 서른이다. 아 남자가 나이 먹는다는 건 너무 잔인하다.
감정을 더 진하게 느끼면서
표정은 더 무덤덤하게 가져가야 한다.
다들 마음으로나 질질 짜면서.
어른들은 노인들은 다 마음에 저수지 하나 정도는 챙겨두고 살아야 하나보다.
습기 차다 정말.





*예전에 발행했던 글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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