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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람 Feb 16. 2016

자위

삶의 파편들

*브런치 X 빅이슈 매거진 참여를 위해  재업로드하는 글입니다.










자위라는 단어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던 순간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얕은 새벽쯤 아빠가 갑자기 쓰러졌던 날이 있었다.

잠시 후 119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왔고

 119보다 더 요란하게 놀란 엄마와 의식을 잃은 아빠를 태워 병원으로 떠났다.


당연히 나는 혼자 방에 덩그러니 남겨졌고 두려웠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를 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야하지도 않은 그런 사진들을

지독히도 느린 인터넷으로 바라보면서

버퍼링 덕분에  머리가슴 배가 순차적으로 나오는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바지를 내리고 미숙한 손놀림으로 육신에 산재한 위로들을 열심히 찾았다.


방이 조용할수록 더 폭풍처럼 몰아치는 불안감을 잊기 위해서

아빠가 쓰러진 하나의 일이 주는 수많은 불안감과 공포들을 잊기 위해서


어린 시절 그 기억은 나에게는 아주 긴 수치의 역사였다.

왠지 큰 죄를 지은 것 같고 내가 참 하류인간 같고 뭐 그런 기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이 먹고 생각해보니 이 사건만큼 

내 삶에서 가장 특정 단어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간 순간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뭐 하여튼 그래서 남들에게 말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진 그런 이야기.


그리고 지금은 이 이야기를 타인에게 해줄 때 

내 정신의 나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기분이라

왠지 모를 쾌감 같은 것도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비밀을 "이건  비밀인데"라고 말하며 일종의 정신적 배설욕을 해결하는 것처럼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신하의 마음처럼

아니면 내가 정신적 노출증이거나


어쨌든 나이를 먹을수록 내 정신의 나체를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 싫지 않다.


나는 타인을 항상 눈앞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계산적이라 딱 내가 보여준 만큼만 보여준다.

그래서 늘 그냥 내 정신적 나체를 먼저 다 보여준다.

내가 보고 싶은 건 흔해빠지고 유행 타는 타인의 정신적 겉옷이 아니라 

단추도 좀 풀고 끈도 좀 풀고 있는 그런 섹시한 모습이라서

정신의 나신에는 육체의 나신보다 더한 퇴폐미가 있다.


보통 인간을 진짜 미치게 하는 건 그런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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