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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람 Feb 18. 2016

혼자 크는 아이는 매일 하늘에 돌을 던졌다.

삶의 파편들



*브런치 X 빅이슈 매거진 참여를 위해  재업로드하는 글입니다.








혼자 크는 아이는 매일 하늘에 돌을 던졌다.

태양이 죽고 하늘이 멍들어야

제 부모 돌아옴을 알기에,


-투석-





대략 7~8년 전 20대 초반이던 시절 부산 컴퓨터 도매상가의 한 점포에서

컴퓨터를 수리 조립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다.

보통의 하루 일과는 

오전에 전날 온라인으로 주문 들어온 컴퓨터를 조립한 뒤  테스트하고

오후에는 그 제품들은 발송하기.

그리고 아주 가끔 직접 매장으로 찾아와 물건을 사가시는 분들도 계셨다.

대체로 나이 드신 손님들이 직접 오셔서 구매를 해가셨는데 

가장 많이 하시는 말은 "네이버 깔아주세요."

나는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의 그 표현이 너무 귀엽다고 늘 생각했다.

아이들의 말랑한 뇌가 뱉어대는 참신한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한지  한두어 달 되었을 때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비장한 표정으로 손자에게 줄 컴퓨터를 사고 싶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손자랑 같이 사는데

손자가 자기반에서 자기만 집에 컴퓨터가 없다고 했다며

자기는 늙어서 그런 게 필요한지도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너무나도 전형적인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듯한 의복의 형태

그 전형적인 형태가 뭔가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투적인 질문 몇 개를 한다.


"어느 정도 성능을 원하시는지?"

"용도가 무엇인지?"

"가격대는 어느 정도 생각하시는지?"


당연하게도 답변은 시원찮았고 그냥 아이가 쓸 정도로 해달라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할머니께 말씀드린 가격이 기억난다 본체 25만원 모니터 10만원

대략 35만원의 말도 안 되는 가격

할머니는 배에 매달린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서

일절의 망설임이나 흥정도 없이 계산을 하고 주소를 주시고 떠나셨다.


컴퓨터를 설치해드리러 다음날 가보니

너무 뻔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을 것 같은 달동네의 녹슨 대문과 작은방이 나를 반겼다.

아이는 마당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흙과 돌멩이 사이의 무언가를 무료하게 던지고 있었다.


할머니와 아이 단 둘이 사는 집

집안의 오래된 갈색 장판의 끈적함과

방안에 진동하는 고된 삶의 냄새의 끈적함이

 발바닥과 콧속으로  달라붙어서

내 마음속까지도 착 바닥에 달라붙는 기분을 주는 그런 집.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돼 보이는 아이는 나를 산타처럼 바라보고

나는 그 눈빛을 등으로 받아내며 조용히 컴퓨터를 설치했다.

그리고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간단한 사용법들을 알려줬다.

요즘은 학교에서 컴퓨터를 쉽게 쓸 수 있어서 그런지

컴퓨터를 어느 정도 쓸 줄 알아서 걱정 없이 나올 수 있었다.


할머니의 감사 인사와 상투적인 밥 먹고 가요를 뒤로하고

매장으로 돌아와있으니 사장님이 물어본다.

가보니 어떠냐고 그냥 본 대로 말해주니

사장님도 별말 없고 그래서

그냥 평소처럼 일하고 집에 왔다.


그 달 내 아르바이트 월급은 80만원 이었다.

원래 매달 월급은 120만원인데 그 달 나는 80만원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통장에 120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사장님은 생각보다 좋은 사람 이었다.

아이도 생각보다 좋은 컴퓨터를 썼을 거다.

적어도 아이가 스스로 돈 벌 수 있을 때 까지는 간신히 버텨줄.




시멘트 바닥에서 돌멩이를 던지는 아이에게서

중학생 때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집안의 사업이 망한 뒤 빚과 소송 때문에 아빠는 정신없이 바빴고

거기다가 건강도 안 좋아지셨는데

매일같이 집에 돈 때문에 찾아오는 화난 사람들까지 너무 많아서

엄마와 나만 멀리 있는 다른 나라로 떠났었다.


낮에 엄마는 가정부로 일을 하러 가고

나만 혼자 집에 남아서 반년을 거의 벽만 보고 지낸 적이 있다.

온전하고 화목한 삶을 상실감과 절망감속에서 간절히 기다리던 시절.


아빠는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늘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를 사다 주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유난히 입이 짧았고 치즈버거는 내가 잘 먹던 몇 안 되는 음식 중에 하나

나는 늘 저녁에 들어오는 아빠보다 맥도날드 봉지를 보며 신나 했는데

반년만에 한국에 돌아가서 아빠를 만나보니

맥도날드 봉지보다 아빠를 보는 게 훨씬 신나는 일이었다.


아마도 아이에게도 태양이 죽고 하늘이 멍들면

찾아오던 행복이 있었겠지.

그 행복을 아이도 지금쯤 다시 다 되찾고 살았으면 좋겠다.

되찾지 못했다면 그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여튼 그때 내 기분이 그랬다.

아이 얼굴을 몇 초 보지도 않았는데

10년 정도의 감정과 기억들이 터진 둑 마냥 몰려와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아이가 어른이 다 되었을 지금쯤 생각이 또 나서 

글로 남긴다.


삶은 너무 불공평하다

나는 그 점을 사랑하고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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