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편들
중학교 때 내 별명은 투탕카멘이었다.
그 유래는 사실 별거 없는데 수련회에서 투탕카멘 마냥 가슴에 양손을 올리고 자서,
그냥 잠든 그 자세 그대로 다음날 일어났다고 애들이 붙여준 별명
나는 잠든 자세 그대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자면서 움직임이 아주 적은 편 소리도 거의 내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치면 무음 모드, 나와 결혼할 여자는 숙면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가끔 베개 밑에 손을 넣고 자기라도 하면
다음날 손에 피가 안 통해서 강력한 쥐가 난다.
그 기분이 어떠냐면 꼭 바늘 수천개가 손을 콕콕 찌르는 것처럼 저리고
내 손이 프랑켄슈타인 손마냥 3배는 커진 기분
그리고 손이 꼭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 된 기분이 든다.
가끔은 나를 따듯하게 덮어주던 어떤 사람 혹은 감정들이
점점 무겁고 버거워져 마음을 꾸욱 짓누를 때가 있다.
그런 것들을 나 살자고 결국 떠나보낼 때는 꼭 손에 쥐 나듯 마음에도 쥐가 나는 기분이 든다.
바늘로 찌르듯이 저리기도 하고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부어버려서 내 목구멍을 틀어막는 기분이 들고
왠지 모르게 숨 쉬는 것도 수동으로 전환되고
또 내 마음이 꼭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 된 것처럼 자유자재로 조절되지 않는 기분도 든다.
그러나 이 끔찍한 고통들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지고
내 손도 내 마음도 다시 온전한 나의 것이 된다.
살아있는 나를 유지하기 위해선 나를 아프게하는 자세들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온다.
투탕카멘이 한 자세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건 죽었기 때문이니까.
누군가에게 이별은 어떤 면에서 생존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