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편들
나는 법대를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의류학과로 재입학한 뒤 학교를 졸업했다.
그 덕분에 대학교를 6년가량 다녔는데
법대를 다닐 때도 의류학과를 다닐 때도 주변에 있던 내가 본 모든 대학생들은
싫어몬들이었다.
과제하기 싫어 시험 치기 싫어 수업 듣기 싫어 학교 다니기 싫어
싫어싫어 다들 하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꾸역꾸역 하고 사는 싫어몬들.
4학년 1학기쯤 어느 날
졸업 패션쇼를 준비를 하던 친한 여동생이
졸작 만드는 거 때려치우고 싶다고 너무 하기 싫다고
진짜 미쳐버릴 거 같고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숨이 막힌다고 이야기하는걸 듣고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기 싫은 건 곧바로 포기하고 안 해버리는 삶을 살면 어떻게 되길래 사람들은
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꾸역꾸역 하고 살까??
마치 싫은 반찬을 억지로 매일 먹고사는 사람들처럼, 꾸역꾸역.
그래서 내가 딱 한 학기만 실험적으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하기 싫으면 딱 그만두고 안 하는 삶을 살아봤다.
그때 얼마나 그 실험적인 삶에 미쳤었냐면
수업 이름을 이야기할수 없는 특정 실습수업에서
내가 실습을 하다 딱 하기 싫어져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
교수님이 다가오셔서 왜 가만히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한 학기 동안만 뭐든 하기 싫으면 바로 안 하는 삶을 살아보려 하고 있다고
설명드렸던 기억이 난다.
쿨하고 좋은 교수님이라서 웃고 넘어갔던 듯.
그러나 저런 자잘한 추억들을 제외하면
그때 도대체 뭐 하고 살았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인생에서 그 부분이 실수로 스페이스를 쭉 눌러버린 페이지가 된 기분
그때 이야기를 쓰다 보니
왜 띄어쓰기는 단어나 문장 사이 한 칸씩 해야 이뻐 보이는지 알겠다.
휴일은 왜 일주일 중에 이틀뿐인지 알 것 같다.
인간은 압박감이 없으면 해방감을 알 수 없는 존재인가 봐.
그 어떠한 압박감들이 인생에 꾹꾹 족적을 남겨서 기억을 남겨두는 거겠지.
뭐 어쨌든 하기 싫은 것은 바로 포기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해보고 살아본 결과
그러면 결국 하고 싶은 것들이 하기 싫은 일이 된다.
우주의 균형 저울은 굉장히 악랄하게 설계되어있다.
나는 온전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 꼭 이 저울을 속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