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1 "호스트바의 게이2"
2월 18일 목요일
호스트바 1일 차
친구가 연결해준 가게로 첫 출근을 했다.
금요일부터는 가게가 바쁘니 목요일에 가서 사람들이랑 안면도 트고
이야기도 좀 해두는걸 추천해서 목요일을 첫 출근 날짜로 잡았다.
나를 담당해 주는 실장이 매일 열한 시 반에 출근해라고 하길래
그 시간에 딱 맞춰 출근했는데 막상 가보니 대충 열두 시 반쯤 돼야
선수들이 한 명 두 명 출근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서 어색하게 폰만 만지고 책만 읽었다.
그렇게 나 혼자 어색함과 쉐도우 복싱을 하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을 때
담당 실장이 다가와서 이름은 어떻게 할 건지
실명을 쓸 건지 가명을 쓸 건지 묻길래 가명을 쓰고 싶다고 했다.
기왕 거짓말 여행을 온 김에 이름도 바꾸고 싶어서.
무슨 이름을 쓸까 고민하다가 무난하게 정환이로 했다.
그냥 갑자기 친구 이름이 생각나서.
정환으로 하고 싶다고 말하자 말자 촌스럽다고 구박받았는데
속으로는 톰브라운 삼선으로 뒤덮은 니 옷 스타일이 더 촌스럽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뭐 어쨌든 정환이로 이름을 정하고 대충 호스트바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실장에게 설명을 들었다.
간단하게 서술해보자면 주로 손님들은 실장들의 영업을 통해서 가게를 방문하고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이 "초이스"를 요청하게 되면
선수들이 4~5명씩 조를 맞춰 룸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이름을 이야기한 후
가게에서 정해주는 멘트로 인사하고 퇴장을 한다.
참고로 이 가게에서 밀고 있는 멘트는 "즐거우세요!"였다.
윽 너무 하기 싫은 멘트.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손님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선수들을 지목하고
그 즉시 옆에 앉아서 같이 술을 마시게 된다.
이렇게 성사가 이루어지는걸 "메이드"라고 부른다.
메이드가 되고 나면 룸에 착석한 시간부터 시급을 챙겨주는데
보통 시급 3 만원을 주고 그 중1 만원을 담당 실장에게 때어주는 방식
[시급을 여기서는 TC라고 부른다. Table charge의 약자인 듯,]
그 외의 팁들은 모두 자신이 챙길 수 있다.
실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보다 굉장히 합리적인 보수를 지불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부모님 수술비나 집안의 빚 같은 피치 못할 사정에 쫓겨서
급여를 빚으로 끌어당겨 쓴 뒤 건달 사장의 고리대금에 시달리며 번 돈을 이자로만 다내는
악순환의 고리를 달고 계속 살던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선수들은 여기서 일하는걸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여겼다.
길티 플레져의 천국, 욕망이 가득한.
악순환의 고리가 아닌 천사 고리가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장의 호스트바 작동원리 강의가 끝날 때쯤 꽤 많은 선수들이 대기실에 도착했다.
서비스직군의 특징인지 몰라도 보통 남자들의 사회와 다르게 상당히 다정다감했다 사람들이.
뭔가 분홍분홍 하고 주홍 주홍 한 화기애애한 분위기
영하의 어색함에 얼어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따듯하게 말도 걸어주고.
나이 묻기 혹은 출신 성별 판독용의 뻔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 었지만
그 덕에 내가 잘 해동되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해동과정 속에서 순식간에 형이라고 부를 사람들과 친구라고 부르면 될 사람들이 생겨났다.
인간관계의 전자레인지 같은 곳이었네 대기실은.
특히 주원이라는 아이는 동갑이라며 친하게 지내 자고 자기 이야기를 쉴세 없이했다.
자기의 첫 손님이 자기보고 주원을 닮았다고 해서 주원이란 예명을 지었다고 했다.
진짜 주원이 들으면 각시탈 어택 할 것 같은 발언이었지만 사회생활용 미소로 대답해주니 신나서는
자기는 이 일하는 게 너무 좋다며 돈도 벌고 섹스도 실컷 할 수 있다고 떠들어댔다.
그러고 보면 호빠 일이라는 게 물욕과 성욕의 동시 발기를 사정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주원이 이야기로 돌아가면 자기는 섹스 중독자라서 이일을 한다고 했다.
그저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늘 새로운 사람이랑 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자기 인스타그램을 키고 자기가 디엠으로 만나서 잔 여자들을 쭉 보여줬다.
얘는 사진이 사기라고 얘는 남자친구 있는데 싸웠다길래 위로해준다며 술 한잔 먹자 해서 했다고
얘는 무척추 생물 같았다느니 등등등 인스타그램으로 여자와 섹스한. SSUL을 대기 타임
내내 들었다. 그러면서 초이스를 위해 3번 정도 룸에 불려 갔는데 결과부터 말하면
한 번도 메이드되지못했다. 뭔가모를 굴욕감과 내 외형에 대한 슬픔이 밀려왔다.
주원이가 평일이라 그렇다고 내일부터 손님 많아서 금방 메이드 될 거라고 위로해줬다.
형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내일부터는 자기랑 같은 조로 들어가잔다.
그러면서 형님으로 모시라고 계속 장난을 쳤다.
주원아 근데 너도 오늘 메이드 안됬잖아.
그리고 사실 나 너보다 다섯 살 많아.
아 이렇게 대기실 지킴이가 되는 걸까 싶어 두렵다.
1일 차 이야기 끝
2/19 금요일
호스트바 2일 차
이날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근하지 못했다. 담당 실장에게 한소리 들었고 열심히 사과했다.
2/20 토요일
호스트바 3일 차
오늘도 첫날처럼 열한 시 반에 출근했다.
담당 실장이 어제 일로 나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하는 눈치라 성실함이라도 어필하고 싶어서..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서 어제보다는 편해진 마음으로 앉아서 연기용 시집을 꺼내 읽었다.
어제 인사한 사람 중에 시현이라는 형이 다가와서 먼저 말을 걸었다.
대기실에서 책 읽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고 말하는 나보다 어린 28살짜리 형님에게
소녀처럼 수줍은 척을 했다.
내가 솥에 담긴 낙지가 되는 것처럼 손발이 꾸물꾸물 오그라드는 기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었다.
형은 심심했는지 자기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원래는 운동선수가 꿈이 었는데 부상당하고 방황하다가 그냥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면
돈이나 많이 벌 자라는 걸 목표로 잡고 낮에는 보험 팔고 밤에는 여기 출근한다고 말했다.
원래 어머니께서 보험판매를 하셨는데 그걸 이어받아서 하고 있다고.
나 보고도 낮에 하는 일도 가져보라고 이야기해줬다.
여자 좋아하냐고 물어보길래, 그냥 별 생각이 없다고 말했더니 그래야 일 잘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자기는 여자도 관심 없고 당연히 섹스에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을 뿐이라고,
여기 있는 선수들 생각보다 멍청하고 순진해서 여기서 번 돈 같은 화류계 여자애들한테
공사당해서 돈 많이 날린다고 말해줬다. 너는 그러지 말라면서 이것저것 충고를 해줬다.
아마 내가 가게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간적으로 대화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낸 형 일 마치고 형이 2차를 안 가면 거의 같이 밥 먹고 집에 들어갔다.
형이랑 이야기하는 도중에 담당 실장과 친하다는 여사장들이 가게에 놀러 와서 룸에 초이스를 들어갔다.
담당 실장이 귓속말로 오늘 내가 무조건 메이드 될 거라고 이야기해줬다
저 여사장들 중에 처음 오는 선수만 부르는 사람 있다고.
실장 말대로 "즐거우세요!"를 말하자마자 어떤 여사장이 나를 자기 옆에 착석시켰다.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조용히 영업 미소를 장착하고 옆에 앉아서 술을 따라 줬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멀쩡하게 생긴 외모의 여사장, 다짜고짜 자기가 어때 보이냐고 묻길래
"백화점 1층에서만 쇼핑할 것 같이 생기셨어요, 유동자산이 50억 이상이신 분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뻔한 이야기 안 해서 좋다고 말하면서 또 출신 성별 판독용 대화가 오갔다.
몇 살이니 부터시작해서 왜 이일을 하는 거니로 진행되는 타인과 타인의 첫 만남 전용 대화들.
여사장은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갈수록 처음에는 입에서 도도함이 흘러내리다가
나중에는 신세한탄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줄여서 이야기하면 자기는 와인바를 운영하고 있고
그 와인바는 자기 전남편이랑 이혼하면서 위자료로 받은 것인데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전남편에 대한 증오의 말을 계속해서 뱉어댔다.
욕하고 욕하고 또 욕하고.
[대충 이야기를 듣고 추측해보면 전 남편도 밤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 과정에서 여자 문제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사실 자기는 외로워서 여기 온다고 했다. 그때 여사장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이를 먹을수록 외로움을 채우는데 쓰는 돈이 안 아까워, 내가 외롭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 쓸 수 있어"
신입들만 찾는 이유도 밤일에 물들지 않은 정상적인 상태의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걸 호스트바 와서 찾는 것도 좀 이해가 안 갔지만 열심히 여사장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러다가 여사장은 화장실에 갔고 [ 이유는 모르겠지만 룸 속에 화장실이 다 개별로 구비되어 있다.]
한참을 나오지 않아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보니
변기에 걸터앉아서 팬티를 못 올리겠다고 계속 징징거리고 있었다.
제가 올려드릴까요 라고 물어보니 자기가 한다고 화를 냈다.
나는 화장실 앞에 서서 다 큰 여자가 팬티를 못 올리고 30분간 씨름하는걸 바라보았다.
불과 한두 시간 전만 해도 멀쩡하게 도도하게 걸어 들어온 그 여자가 맞나 싶었다.
외로움이 저 사람을 팬티도 못 올리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외로움을 핑계로 일부러 팬티를 올리지 않는지는 몰랐지만
그 장면이 현대미술 같아서 그냥 지켜봤다.
그리고 한참 뒤 에 술을 좀 깬 손님이 자기 대리 부르는 곳 까지 따라가 달라고 해서
가게 밖으로 나와 차 있는 곳까지 같이 갔다.
여사장이 술이 덜 깬 목소리로 같이 갈래?라고 물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서 있었고, 다음날 실장에게 이일로 또 욕먹을걸 걱정했다.
그런 걱정을 하는 동안 여사장은 쿨하게 가버렸고
나의 첫 손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게로 돌아왔다.
가게로 돌아와 보니 실장이 2차 안 갔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하니 별말 안 했다.
2 차가고 안 가고의 나름 자유가 있더라
알고 보니 실장은 어차피 자기 페이만 챙기면 끝이라서 이런 걸로는 별말 안 하는 듯했다.
실장이 술좀 많이 마시라고 했다. 그래야 매출 많이 나온다고.
집으로 돌아오자 말자 침대에 누웠다.
오는 길에 술이 깨면서 머리가 너무 아파서 옷 하나 못 벗고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나를 즐겁게 해주던 것에서 깨어나는 것은 꼼짝도 못 할 만큼 아픈 일이다.
여사장이 팬티 하나 못 올리고 괴로워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 사람은 자기를 기쁘게 해주던 사람에게 상처받고
꼼짝도 못 하고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팬티 하나 못 올리는 그 사람을 너무 병신 같다고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