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호스트바의 게이 3"
2/21 일요일
호스트바 4일 차
실장이 일요일은 손님이 없으니까 안 와도 된다고 이야기해서
안 가려다가 혹시 몰라서 출근했다.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 앉아서 책만 보고 있는데
주원이가 연락 와서 근처 피시방으로 오라고 했다.
보통 일요일은 손님이 거의 없어서 선수들 대부분 안 나오거나
나온 선수들끼리 근처 피시방에서 게임하고 있다가
손님 왔다는 연락 오면 가게에 들어간다며 자기도 거기 있으니 오라고.
피시방에 가니 선수들은 전부다 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원이 옆 컴퓨터를 키고 선수들 게임하는 거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알바생이 민증 검사를 하러 왔다.
순간 나이 속인 거 들킬까봐 진짜 당황해서 등 뒤가 따끔따끔하고
식은땀이 살짝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이 순간은 늘 무표정한 내 얼굴이 고마웠다.
내가 만약 표정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얼굴 표정이 믹서기에 넣은 밀가루 반죽마냥
뒤죽박죽 되었을거 같다. 그리고는 얼굴에 빨갛게 열이 올라 잘 구워진 빵으로 변했겠지.
이런 미친 생각과 더불어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는 몇 초의 찰나 주원이가 알바생에게
"아 형님 저랑 동갑이에요. 저희 가게 직원이에요."라고 말했고
알바생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주원이의 자기자랑과 여자 이야기를 하루 종일 들어준 게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 첫 순간이었다.
피시방에 온지 한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주원이는 여자 만날 거라고 가버리고
남은 선수들도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길래 나도 그냥 스륵 유령처럼 나와서 집으로 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일요일은 거의 일이 없고 보통 예약식으로 미리 지목되어있는 선수들만
출근한다고 한다. 그 뒤로는 일요일은 출근하지 않았다.
2/22 월요일
호스트바 5일 차
오늘도 열한 시 반에 출근했다.
현실 속의 나는 더블클릭하면 게으름과 나태가 자동 실행될 정도로
지각과 결석의 아이콘인데 이렇게 정시에 출근하니 무언가 어색했다.
여전히 이 대기실에 앉아있는 것 역시도 어색했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기계적인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룸에서 콜이 와서 "즐거우세요!"를 외치러 들어가려는데 사람들이 다들 머뭇머뭇
들어가고 싶지 않아했다. 왜 저러나 싶어서 눈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데 다른팀실장이
나를 포함한 어리바리한 신입애들 4명 정도를 데리고 룸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이름을 말하고 테이블을 보니 테이블에 타로카드가 쭈욱 깔려 있었고
자리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유바바를 닮은 손님이 린다페로우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테이블에 수정구슬 하나 놓아드리면 마법을 부릴 것 같은 모습
대략 나이대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 손님의 신묘한 겉모습을 체크한순간 속으로
제발 나를 초이스 해달라고 빌었다.
저런 사람이라면 꼭 글로 남길만한 이야기들이 남을 거라는 생각에.
그러나 덩치 크고 잘생긴 다른 선수가 메이드 됐고 나는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하긴 생각해보면 마술사들도 미녀들을 데리고 마술 하던데 타로술사도 미남이 필요하겠지.
대기실에 와서 선수들끼리 하는 이야기들을 귀테나를 바짝 세워 도청해보니
타로술사 손님은 술도 별로 안 마시고 몇 시간 동안 타로만 계속 보게 하는데
그 타로점의 결과는 항상 최악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 집에 그런 액운을 물리치게 해줄 부적이나 토템이 있다고
같이 가서 가져가라고 한다는데 나는 그 타로술사 손님의 남성 유인법이 너무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타로술사 손님은 실제로는 타로술사가 아닌 부동산일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 가게의 선수 한 명이 실제로 액운을 쫓아줄 부적을 구하러 그녀의 동굴로 들어갔고
그 뒤로 한 두 달간 그녀의 지목 선수로 지내다가 어느 날부터 사라졌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섬뜩 하긴 했다. 그래도 타로술사 손님의 유인법은 너무 귀여워.
새벽 3~4시쯤 되었을 때 또 초이스를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이름을 말하자마자 메이드 돼서
손님 옆에 바로 착석했다. 25살이라고 말한 손님은 나랑 비슷한 일을 한다고 했다.
보통 내가 알기로는 화류계 여성들이 호스트바에 오면 더럽게 놀고 선수들 엄청 괴롭힌다고 했는데
이날 받은 손님들은 그렇지 않았다. 솔직히 외모도 이뻐서 조금 미안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데..
얼굴에 수술 안 한 거 같아서 나를 골랐다고 했다. 요즘 호스트바 가면 남자들 전부다 코에 전봇대
박아 뒀다고 자기는 그런 거 싫다고 그러면서 내 코를 만졌다.
장난스레 코를 만지는 손목 끝에서 바이레도의 집시워터 향이 났다.
예전에 사고 싶어서 시향 했다가 가격 때문에 내려두고 온 향수.
술이 올려놓은 체온 덕에 향수 향기가 더 빨갛게 이쁘게 피어났다.
향수 이야기 꺼내는 거 너무 진부한 것 같아서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먼저 내 목에 코를 대고 킁킁대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향이라고 칭찬해줬다.
"탐다오 쓰는 거 맞지? 나는 그런 나무 냄새, 절 냄새가 좋아
어릴 때 살던 외할머니 집 향기가 나서 편안해지는 기분이야. 나는 좀 편안해지고 싶어"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솔직하게 말했다.
옆에 앉았을 때 집시워터 뿌린 거 바로 알았었다고.
집시 워터 향 꼭 숏컷친 여자아이나 예쁘장한 남자 같은 중성적인 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네 체온과 섞이니까 아주 도도하고 섹시한 향 같다고 막 향수 뿌려진 부위에서
향기가 꽃처럼 활짝 피는 것 같다고 말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내 표현이 느끼했는지 아니면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으면서 네가 시인이야 글 쓰는 사람이야 뭐야 징그러 재수없어 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진짜 자기 이야기가 이렇게 글로 써질지는 몰랐겠지. 저는 사실 진짜 글 쓰는 사람이에요.
어쨌든 그렇게 나를 구박하고 술좀 더 마시더니 무릎 위로 푹 쓰러져서 자기 시작했다.
같이 온 손님들이 쟤 원래 술 많이 먹으면 잔다고 놔두라고 해서 인간 베개가 돼서 두 시간가량 멍하니
있었다. 인간 베개는 잠든 손님의 옆얼굴을 자세히 관찰한다.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두상도 조그맣다.
약간 뾰족해 보이는 귀에는 3개의 피어싱이 있고 귓볼이 빨갛다 피부는 하얗다. 정샘물이 마리텔에서
이야기한 21호 파운데이션을 써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하얗다. 약간은 인위적인 콧날과 연장술을 받은 것이 분명한 긴 속눈썹 열심히 바른 립스틱의 색상이 다 날아간 약간은 창백한 입술.
그리고 깊게 잠들어 쌕쌕 거리며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작은 어깨.
저 작은 어깨에 어떤 짐이 있어서 편안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걸까 생각해본다.
옆에 손님과 선수는 열심히 키스를 한다.
키스 소리와 인간 베개와 잘 자는 여자 한 명으로 가득 찬 룸, 호스트바 기준으로 아주 편안한 밤이다.
손님이 깨어나서 택시까지 에스코트해줬다.
향나무 같은 남자를 어디서 만나서 매일 편하게 잠들길 빌어줬다.
집에 와서 오늘 뿌린 향수 통을 바라봤다. 발망 옴므, 나는 거짓말이 좋다.
2/23 화요일
호스트바 6일 차
이날은 새벽 4시까지 초이스도 되지 않고 손님도 3~4팀 밖에 오지 않아서 일찍 퇴근했다.
주원이도 안 나오고 시현이 형이라고 쓰지만 나보다는 동생인 형도 나오지 않아서
너무 무료한 하루였다. 사교성 없는 성격 탓에 대기실에서 쓰레기만 타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걸 선수들은 이렇게 말하더라 쓰레기 탄다고]
집에 가는 택시에서 눈을 감고 있으니
눈앞이 오렌지 빛으로 다시 흑빛으로 고장 난 전구처럼 몇 차례 아주 느리게 까아아암빠아아악였다.
난 터널을 지나는 순간이 좋다. 터널을 하나씩 빠져 나올때마다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든다.
일하러 가는 길에는 터널이 꽤 많이 있다.
앞으로는 그 길을 지나칠 때마다 다른 세상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초이스 들어갈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겠다.
예전에 아빠가 삶은 돌아갈 집이 없는 멋진 여행이니
사진만 찍고 서있지 말고 뛰어들어서 즐기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다른 사람들을 눈으로만 찍고 있지 않고 좀 더 뛰어들어서 새 인생 그러니까 새로운 여행을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