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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조용히 좀 해주세요

혼자 잠시라도 사라질 수 있다면

by 시경
인스타그램에 각자의 불행을 업로드해야 한다면 어떨지 상상해 본다. 조금이라도 완벽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면 자체적으로 검열된다면. 사실 모아둔 돈은 하나도 없고, 매일 괴롭다고, 어떤 날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행복하지 않다고, 그래도 살아간다고……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푸념들만 공개된다면...... 우리는 그렇게 휩쓸려 지나간 상처를 헤집어 어릴 적 암기한 말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I'm not fine, and you? 나 괜찮지 않아, 넌 어때?”


분명한 사실은 불행만이 우리를 위로한다는 것. 불행은 흉내 낼 수 없는 각자만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도 불행하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대하다는 것. 이제 멋진 것은 궁금하지 않다. 그렇다면 행복이 아닌 실수 자랑이 유행인 세상을 꿈꿔봐도 될까.

유지혜의 서울통신 중에서


온종일 시끄러운 소음들에 둘러 싸여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옆에서 물걸레 청소 중이신 로보락의 잔잔한 소음. 신랑이 소파에 누워 보고 있는 유튜브 게임 방송. 가만히 있는 핸드폰마저 시끄럽다. 시계를 보려 핸드폰 화면을 열어보면 금세 쌓여 있는 각종 푸시앱에 나는 지고 말았다. 설정에 들어가 알림을 끄고 지워도 나는 어느새 다른 어플을 설치했고, 신규 가입을 했고 푸시 알림 세상에서 이길 수가 없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펼쳐진 알고리즘의 바다. 나는 그게 정말이지 시끄럽다. 이사 후에 길어진 출퇴근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공기에 피로감을 느꼈다. 신혼을 막 시작한 예비 신부의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도무지 잠시라도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 신랑이 보고 싶어 눈물이 날지도 모르지만, 이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려면 소식을 끊고 사라질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혼자 사라지긴 억울해서 모두가 공평하게 멈추길 바라기도 한다.


이다지도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인지 몰랐다. 사랑하는 우리 예비 신랑과 같이 살 게 된 지 두 달이 지났다. 내 안에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이 생겨났다. 혼란스러웠다. 남자친구가 신랑이 되고 같이 사는 행복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좀 이상해졌다. 자꾸 어두운 감정이 들어 조그만 일에도 쉽게 풀이 죽었다. 대체로 항상 피곤했다.


지난 주말은 신랑의 외삼촌 부부가 맛있는 저녁을 사주셨다. 두둑한 용돈에 현대백화점 자스민 카드, 부부로서 잘 살라는 덕담에 감동받아 집을 향했다. 가는 길에 어머님 댁에 들러 물건을 픽업하는 데 사건이 터졌다. 현관문 앞에선 강아지들이 요란스레 짖어대고, 어머님 아버님 신랑과 나 모두 제 할 말을 하고 있고, 특히 어머님의 질문에 퉁명스레 대답하는 어머님의 아들과 그 속에서 그게 너무 시끄러운 나.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하자고 했잖아.”라고 신랑의 말을 받아치니 그게 기분이 무척이나 나빴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꿍해선 눈을 흘기는 게 얼마나 미웠던지….. 같이 스타일러 돌릴래?라는 질문에 됐다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버리는 게 화가 났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애꿎은 스타일러 문을 부술 듯이 닫고서 나를 왜 이리 무시하냐며 눈을 부라리고 신랑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 소리를 지르고 던지고 마구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내가 이다지도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싸움은 그다음 날까지도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아무 말 없이 각자 출근을 했다. 매일 아침 보온병에 커피를 내려주는 신랑이 커피를 내려주지 않았다. 내 마음도 전혀 풀린 게 아니었지만 소리 지르고 화낸 것에 대해 출근길 버스 안에서 반성하면서 카톡을 남겼다. 그때까지도 울분 때문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퇴근을 해서 집에 와서도 인사도 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진정을 하고 의자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신랑은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고, 내가 미친 듯이 화를 낸 것에 대해서 지적했다.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만큼이나 화가 난 걸 어떡하지?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눈물이 더 쏟아지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신랑이 미웠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마음을 가라앉혀 보고선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장의 빈칸이 너무 많다. 이사를 하고나서 일기를 쓰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랬구나. 그동안 시끄러웠던 건 밖이 아니라 내 머릿속의 생각이었구나. 지난 일기들을 읽어보며 30년 간 달리 살아온 우리의 일생을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 단 며칠의 공백에도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으므로. 그의 잘못된 행동이 잘못된 게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이고, 달라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고… 나는 왜 이리도 화가 났는지 우리가 왜 이렇게 크게 싸우게 된 건지 일기장 속에 다 있었다.


일기를 통해 놓친 것들을 본다. 어쩌면 일기는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자들의 종교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기억을 다른 시공간에 미리 새겨두려는 강박이 없다면 일기 쓰기는 포기하기 쉬운 습관이다. 그러니까 일기를 쓰게 만드는 건 습관이라기보다 믿음에 가깝다. 이 기록이 중요할 것이라는 믿음. 이 기록이 내 인생을 지탱할 거라는 믿음. 기억들이 나를 증명할 거라는 믿음.


용기를 내서 방문을 열고 신랑에게 내가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먼저 용서를 구했다. 신랑도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서로의 마음을 보살필 줄 몰랐던 신혼부부의 눈물겨운 파혼 위기였다.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고요한 자신을 찾아야 한다. 글을 ‘쓰는 것‘과 ’ 짓는 것’은 차원이 다른 숭고함을 지닌다. 정성스레 글을 ‘지을 줄‘ 알아야 내 마음도 잘 ’ 지을 수‘ 있다. 애꿎은 로보락 청소 소리에 예민해지지 말고, 내 마음을 ‘짓는 일’에 부디 한 시간만 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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