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서 허니문
리조트 고르기
결혼준비를 하면서 만나게 된 행운들이 그득하다. 이름도 얼굴도 마음씨도 고운 연재 플래너님 덕분에 우리 신혼여행을 담당해 줄 좋은 분도 만났다. 허니문투어 여행사의 홍진우 이사님을 통해 좋은 후보지들을 고르고 골라 좋은 가격에 5성급 리조트를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세븐/이다해 커플, 에일리/최시훈 커플, 천둥/미미 커플 등 유명 연예인들의 허니문을 담당한 이사님은 어떻게 골라야 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리조트를 추천해 주셨고 긴 상담 끝에 몰디브대학 리조트학과를 졸업하게 되었다. 우리가 고른 곳은 “힐튼 아밍기리 리조트”.
천만 원이 넘어가는 예산이 드는 만큼 많고 많은 몰디브 리조트 중에 어떤 곳을 골라야 할지 처음엔 감도 못 잡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여행사의 추천을 빌리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몰디브 리조트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갔기 때문에. 넘쳐나는 몰디브 신혼여행 브이로그와 네이버 블로그에 수많은 리조트 후기들이 있어서 정보 접근성이 좋긴 하지만, 여행사 추천을 통한다면 신상 숙소를 할인 혜택을 받고 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식 리조트일 것,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선호하고, 액티비티가 잘 되어 있을 것, 말레 공항에서 너무 멀지 않을 것과 같이 우리만의 기준을 가지고 수많은 리조트 중 우리와 가장 어울릴 만한 리조트를 택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리조트에 대해 아쉬운 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몰디브는 인도 남서쪽 인도양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나라로, 에메랄드 빛, 코발트블루, 투명한 청록색 바다와 고급 리조트로 유명한 세계적인 휴양지이다. 허니문, 스노쿨링, 다이빙, 럭셔리 리조트 여행으로 세계인이 찾는 곳이다. 묵었던 리조트에서는 서양인을 비롯해 중동,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나치게 뚱뚱해서 제대로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조금 있는 흰 머리가 간신히 머리를 덮어주고 있는백인 남성과 그의 아내로 보이는 날씬한 갈색머리 백인 여성은 에르메스 샌들과 분홍색 실크 점프슈트를 입어 시선을 끌었다. 자스민 공주처럼 생긴 중동 여성은 아름다움에 자꾸 눈길이 빼앗겼는데, 그녀의 양 옆에는 늘 시녀들이 붙어있었다. 하늘색 리모와 캐리어를 끌고 하늘색 루이뷔통 바람막이를 걸친 화장기 하나 없이도 좋은 피부와 날씬한 몸을 가진 중년의 아시안 여자와 그의 남편으로 보이는 중년의 백인 남성은 톰브라운 폴로셔츠에 그의 손목이는 반짝이는 손목시계가 빛났다.
몰디브는 1,000개 이상의 작은 산호섬으로 이뤄진 국가라고 한다.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는 섬은 200여 개이고, 그중 100여 개 섬이 리조트 전용 섬으로 운영된다. 각 리조트가 섬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기 때문에 프라이빗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그 안에서 일을 하는 리조트 직원들의 삶이 정말 궁금했다. 우리의 서비스를 담당해 준 Reea는 탄탄한 피부가 아름답고 꽉 묶은 포니테일에서 그녀의 터프함이 느껴지는 스탭이었다. 그녀는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여기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걸 지. 그녀의 평소 생활은 어떨지. 우리 관광객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진실로 궁금했다. 커다란 바다를 건너와 만난 이들의 삶은 우리와 아주 많이 달라 내 삶이 그녀와 같아진다면 어떨지 종종 상상하게 되었다.
힐튼 아밍기리 리조트에는 널스 샤크 투어가 유명하다. 오전 11시 반에 다이브 센터에서 출발해 30분 간 보트를 타고 심해로 달려간다. 핸드폰과 빵빵한 JBL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보트 뒤에서 바다와 햇빛을 만끽할 수 있다. 널스샤크 투어 지점에 도착하면 다른 관광객들이 타고 있는 보트들도 볼 수 있는데, 그날 투어를 신청한 이들이 우리 밖에 없어 프라이빗하게 둘이서 스노쿨링을 즐길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 거의 한 시간을 널스 샤크, 가오리, 물고기들, 산호초를 구경하며 한국에서 대여해 온 고프로 카메라에 아름다운 바다 밑 세상을 담았다. 널스 샤크는 사람에게 비교적 온순한 상어로 입을 오므리며 사냥할 때 나는 소리가 아기에게 젖을 주는 소리 같아서 붙여졌다고 한다. (nusse, 수유하다) 노홍철 유튜브에서 봤던 것보단 크기가 작았고, 매우 느긋하고 공격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이토록 많은 해양 생물체들이 지구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죽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졌다. 덕분에 해양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게 되었다. 나의 관심사가 한 뼘이라도 더 넓어져 좋았다.
한 시간가량 상어들과 인사하는 스노쿨링 끝나고 배로 돌아갈 즈음, 컨디션이 나빠졌다. 배에 타자마자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울렁거림을 잘 참고 리조트에 다 도착했다. 엔진을 끄자마자 보트가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보트 뒤로 뛰어가 그대로 폭포 같이 게워냈다. 물고기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었길 바란다.
상어를 잔뜩 보고 와서 넷플릭스에서 상어에 관한 영화와 서바이벌 게임 프로그램에 빠지게 되었다. “All the sharks”라는 상어 찾기 대결 프로그램과 “센 강 아래”라는 돌연변이 상어가 파리에 나타나는 공포 영화는 물놀이를 마친 뒤 시원한 워터빌라의 킹 침대에 누워 보기에 완벽했다. 힐튼 아밍기리 리조트는 올 인클루시브이지만, 아침+저녁을 제공하는 하프보드로 점심은 따로 사 먹거나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늦은 오후에 출출해지면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과 과자를 먹곤 했다. 야심 차게 가져온 떡볶이는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먹지 못하고 가져왔고, 컵라면과 김치, 과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을 것이다. ‘뭐 좀 거기서 사 먹지‘라고 생각했는데, 가격표에는 $4 인 제로콜라가 tax, service fee가 붙어 15,000원이 된다. 우리는 술을 즐기지 않아 음료를 포함하는 옵션은 제외했다. 대신 오후 3시쯤 바에 나가 코코넛 워터를 사 먹거나 논알코올 칵테일을 마셨다. 식사 중에 가끔 와인을 먹는 날도 있었지만, $20 이하라 크게 부담되진 않았다. 다만, 알코올이 아닌 논알코올 음료 무제한 옵션을 추가했다면 맘 편히 마셨을 것인데 아쉬웠다. 술을 즐기는 커플이라면 더없이 좋을 천국이겠다.
워터빌라는 바다 위의 숙소라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곧장 발이 닿지 않는 깊이의 푸른 바다와 만나게 된다. 첫째, 둘째 날과는 다르게 아침에 세차게 비가 왔던 셋째 날 몰디브의 오전이었다. 조식을 잔뜩 먹고 침대와 소파 위를 뒹굴거리다 이내 심심해져 바다에 뛰어들었다. 신랑의 손에 고프로를 쥐어주고 입수! 요시고 사진 같은 장면을 원했다.
그런데 입수하자마자 나를 덮는 거센 파도에 크게 겁에 질렸다. 헤엄을 쳐도 더 멀리 밀려나 몸에 힘이 계속 빠졌다. 살려달라고 버둥거렸지만 신랑은 내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듯했고, 주변에 우리를 도와줄 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보니 빌라마다 구명보트와 조끼가 구비되어 있고, 조류의 세기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멋모르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간 나 같은 상황에 닥치기 마련이었다. 고프로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돌려보니 나의 발버둥은 고작 2분 남짓이었지만 진실로 나는 2분 동안 죽음을 생각했다. 신랑이 얼마나 수영을 잘할 수 있는지 몰랐다. 입수하기 전엔 몸살 기운이 조금 있어 아침을 먹고 나서 감기약을 먹은 상태였다. 당황한 상태에서 세찬 파도 앞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사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나의 살려달란 신호를 그제야 알아차린 신랑이 옆에서 끌어주어 사다리에 조금 가까워졌다. 힘센 파도 앞에 나의 헤엄은 단 5cm 남은 거리를 앞두고 필사적이었다. 그 2분의 필사적임이 생생하다.
출렁이는 파도 앞에 헤엄치기 어려워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지나치게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 파도에 몸을 맡겨버리고 자연스럽게 헤엄을 치다 보면 어느새 사다리를 잡을 수 있다. 우기의 몰디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폭풍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폭풍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다시 해가 뜰지, 아니면 또 다른 크고 작은 폭풍이 기다릴지.
무사히 바다에서 빠져나와 안전하게 빌라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선베드에서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신랑과는 내 죽음의 고비가 담긴 영상을 웃으며 돌려 보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일상에 적응하기 시작한 지금에서야 공포의 2분 동안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들을 곱씹어 본다.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어깨 수술한 오빠는 괜찮은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떡하지?
이대로 내가 기절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사다리를 잡을 수 있는데
제발 살려주세요…!
하나님에게는 권선징악이 없다. 우리가 선하다고 해서 무조건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악하다고 해서 복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나쁜 일도 그러하다. 바다 위에서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묻는 자신을 발견했다. 언제라도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 나쁜 일 다음에 또 다른 나쁜 일이 있을지 좋은 일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나쁜 일을 헤쳐나가는 건 인간 자신의 몫이다. 침착하고 자신을 따라 헤엄치라는 신랑의 말에 그의 팔에 기대어 온 힘을 다해 팔다리를 움직였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맞이할 뻔한 죽음을 생각한다. 간절히 살아야 할 이유가 많은 내 삶을 생각해 본다.
해변 가에 있는 바로 나가 에스프레소 마티니와 코코넛 워터를 마셨다. 우리 앞에 펼쳐진 멋진 야자수들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우리 미래를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