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항공 타고 몰디브 가기
신혼여행은 비즈니스 석을 타라!
사치보다 저축이 현명한 것이라 여기며 20대를 빠듯하게 보냈다. 이제껏 사치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어서 30대에 누리는 사치가 아주아주 달콤하다. 귀하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32번 게이트 앞에서 신랑과 설레어 발을 동동 구른다.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어딘가 낭만적이다. 공항의 큰 창 너머엔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가 보이고 오후의 붉은 햇살이 즐겁다. 비행기에 타서는 보사노바를 들어야지. 손을 꼭 잡고 등에는 날개를 달고서 비즈니스 석 줄로 들어갔다.
신혼여행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었기에 시어머니와 신랑의 달달한 가스라이팅에 힘입어 몰디브에 가기로 정했다. 예산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드는 곳이라 내돈내산으로는 돈이 아까워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게 어떤 축복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시부모님께서 신혼비용을 내주신 덕분에 일생에서 가장 호화롭고 황홀한 허니문을 다녀오게 되었다.
몰디브는 멀다. 직항이 없고 경유로 갈 수 있는데, 보통 싱가포르 항공 혹은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을 통하곤 한다. 우리는 경유 여행 일정은 잡지 않고, 곧바로 몰디브에 가고 싶었다. 공항에서 하루 자야 하는 비행 스케줄이라면, 세계 1위인 창이 공항에서 머물고자 싱가포르 항공을 택했다. 비록 밤늦게 도착하고 아침 일찍 몰디브로 떠나는 비행 스케줄로 바뀌게 되어 유명한 인공 폭포를 보진 못했지만, 싱가포르 항공의 서비스와 시설은 매우 만족! 대만족!이었다.
비즈니스 석에만 제공되는 폭신한 양말을 신고 널찍한 좌석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웰컴 샴페인을 신랑과 함께 건배했다.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싱가포르 수미사테를 맛본 순간, 두 눈이 동그래졌다. 파리에서 먹은 것만큼이나 부드럽고 맛있었던 따듯하게 데워진 패스츄리는 빵순이를 흥분케 했다. 디저트로 나온 무척이나 빨갛고 달고 시원한 수박 두 조각은 정말 예쁘게도 잘라져 있었다.
모두가 처음이라 생생하고 소중했다. 싱가포르 항공에는 신혼부부들이 사전신청을 하면 제공되는 축하케이크와 샴페인도 있다. 면세 쇼핑으로 지친 우리는 우선 공항 라운지에서는 싱가포르 슬링 칵테일과 간단한 식사를 했었다. 그렇지만 기내식도 꿀맛이라 그릇을 모두 싹싹 비웠다. 게다가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치즈 케이크와 차가운 샴페인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결혼식이 끝난 신부의 위장에는 언제나 달콤한 케이크를 위한 공간이 주어졌다.
비즈니스 석의 어떤 이들은 스페셜한 기내식 신청을 한 것인지 해물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도 봤고, 치즈가 아닌 모카케이크를 먹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어떤 메뉴를 골라 먹고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부러워했다. 사실 나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지 않는다. 비좁은 공간 속에서 힘들게 먹고 불편하게 앉아 있는 게 싫어 배가 고파도 꾹 참고 잠을 택했다. 이번 여행에선 비행기에서 자는 시간도 아까워 꿋꿋이 자지 않고 버티었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끼고 보는 영화는 더 재밌었다. 미비포유라던지, 트와일라잇이라던지 하는 고전적인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달콤한 시간을 한껏 채웠다.
밤 10시가 넘어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싱가포르 면세점은 잠도 달아나게 했다. 화려한 주황빛 조명 아래 싱가포르 유명 커피 ‘바샤’와 본 적 없는 고급스러운 패키지들이 그득한 TWG tea shop, 코코넛 맛 쿠키들. 그리고 괜히 명품 브랜드를 기웃거리며 부모님 선물을 찾아 헤맸다. 선물 쇼핑에 지친 우리는 공항 안에 있는 호텔로 지친 발걸음을 이끌어 겨우 들어갔고, 샤워를 하자마자 이내 곯아떨어졌다.
아침 10시 몰디브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찍 탑승구로 향했다. 어젯밤 점찍어둔 선물들을 구매하고, 다시 한번 라운지에 갔다. 한국에선 잘 없는 코코넛 워터를 양껏 마셔 피곤을 수분으로 채웠다.
몰디브로 가는 비행기에는 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비즈니스 석에 탄 신혼부부는 우리뿐이었는데, 특히나 여자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시선이 느꺄졌다. 분명 긴 여정이지만 비즈니스 석이라 하늘 위에서 즐기는 기쁜 여행이었다. 이제 진짜 몰디브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