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로 결혼을 하다니
최소한 이 결혼으로 내 남은 인생이 불행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어야만 비로소 식장에 들어설 용기를 낼 수 있다.
결혼식은 마치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연극 같아서 신부라는 주인공은 연극이 끝나고 돌아가야 할 자리를 잠시 잃은 느낌이 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여름 오후, 태양을 강렬하고 결혼식이라는 한 장면이 눈부시게 빛났다.
눈 앞이 하얘진다는 의미를 알게 된 아침이었다. 청담 메이크업샵을 향하며 신랑의 차 안에서 들은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노래가 아직 귀에 맴돈다. 메이크업을 마친 신부는 기대보다 만족스런 모습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신랑 신부의 무대 위로 올라서기 전부터 신부의 아빠는 금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울고 웃으며 신부를 신랑의 손으로 떠나보내는 아빠는 훌륭한 조연이 된다. 아빠의 긴장을 풀어주려 친척들과 아빠의 지인들에게 코가 빨간 아빠를 놀려대었다. 정작 무대에서 눈물이 왈칵난 건 신부였지만.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버진 로드는 환하고 밝았다. 중간 쯤 왔을 때 눈물이 앞을 가릴 것 같아 입술을 앙다물었다. 겨우 눈물이 들어가고 신랑과 맞절까지 무사히 마쳤다.
수 많은 하객 앞에서 서로에게 전하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그 순간이 신부에겐 시간이 정지한 것 만 같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빠 같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되었고,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 정말 감사해.
신부는 잠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하객분들의 박수를 받고 힘을 내어 다음 문장을 읽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사랑이 고팠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오빠를 만나서 사랑이 얼마나 따뜻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되었어.
정말이지 그를 만나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신랑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언제 어디서나 귀여움을 뽐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용감함과 똑똑함 앞에 신부는 세상이 덜 두려울 수 있었다. 신부는 그에게 기댈 수 있어 행복하다. 그래서 그도 내게 기댈 수 있기를 늘 생각한다. 사랑은 당신의 땀과 노력의 반 그리고 나의 땀과 노력의 반을 더해 우리가 함께할 집을 꾸리는 것. 결혼이란 그런 것일 것이다.
이어지는 성스러운 축복기도와 신부의 절친한 친구의 센스 있는 축사, 웅장하고 멋들어졌던 축가까지. 무더운 날씨에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 결혼식장에 와준 하객분들과 결혼식을 위해 모든 도움을 준 이들의 응원이 세상에 한 커플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결혼은 고귀해진다. 그들을 둘러싼 세상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아 운 좋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게 된다.
결혼식이 연극이라면 진짜 삶은 곳곳에 있다. 원카드 대결에서 10전 10패 계속 지는 신부를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신랑. 발가락 굳은 살을 뜯어 먹는 그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신부. 앞으로 그들에게 펼쳐질 인생이라는 파노라마.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 줄 사람은 찾은거야.
남은 인생이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서로에 대한 확신으로 잘 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