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공은 무엇인가요
사람 한 명을 만나는 게 얼마나 귀한 일 인지 300쪽짜리 책 한 권을 읽은 셈이다. 청첩장 모임을 하면서 지인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결혼식에 기꺼이 발걸음을 해주실 분들과 한 분 한 분 정성 들여 만남을 가지고 있다. 단체 모임에서는 잘 나누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책 한 권을 마주 읽는 경험을 하고 있다.
최근에 만난 분들은 예전 회사에서 만났던 팀장님들이다. 결혼 10년 차, 사회생활 15년 차 인생 선배님들과 5월 공휴일 전야의 성수동 골목길에서 만났다. 두 분 모두 남자분들이라 같은 성별이 아닌 측면에서 40대 남자 인생 이야기를 듣는 내 눈이 반짝인다. 서른에 접어든 여자에게 40대 남자 인생 이야기는 배울 게 많다.
’ 책임감‘, ‘꿈’, ‘가족’
그들의 삶은 책임감, 꿈, 가족으로 차 있었다. 잘 나가는 러닝 브랜드를 론칭하고 늘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이 넘치는 기획팀장님 A. 그의 소망은 주말부부다. 평일에 일과 운동에 매진한다면, 주말은 부부 생활에 더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에너지를 전부 쏟아야 하는 그분께는 그게 현재 불만스러운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아이를 가지지 못한 그들 부부에게 그의 주말 부부 플랜은 개인주의적인 생각이라 여겨진다.
부동산 투자의 행운으로 성수동에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는 디자인 팀장님 B. 일곱 살 딸아이 바보인 그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딸의 이름인 바다만큼이나 넓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인 그는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느라 진이 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그가 사실은 행복해 보인다. 서로의 근황, 업계 소식과 함께 지인들의 이야기까지 주고받다 뜻밖의 질문을 던지셨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성공이 무엇이냐고.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지금은 틱톡 매니저로 일하고 영국인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하게 된 이전 직장 후배의 성공담. 모두가 침체하고 있는 가운데 안정적인 사업 운영으로 꿋꿋이 매출 신장이 일어나고 앞으로 더 잘 될 가능성이 짙은 브랜드. 삼성물산 주 4일제 근무를 하면서 와인 보틀샵을 열어 지금은 부부가 모두 본업을 그만두고 그 일에 매진한다는 이야기.
부러운 인생이다. 그 삶들을 우러러볼 수는 있지만 그들의 삶과 내 삶을 바꿔 살고 싶진 않다. 그 여정의 고됨을 헤아릴 수 없으므로. 그 고됨을 해낼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니까.
일과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A 팀장님은 무한한 투자를 받아 자기 브랜드, 자기 사업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고 하신다. 내가 바라보는 A 팀장님의 꿈은 직장과 업계에서의 인정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열정을 ‘일’에 완전히 쏟는 자아실현을 바란다. 그에게는 그것이 성공이다.
반면에, B 팀장님에게 성공은 가능한 한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이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가 느껴진다. 경기가 어려운 근래에 구조조정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불안정한 기업 상황 아래에 팀장 자리는 불안하다. 책임져야 하는 아이를 위한 밥벌이를 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성공이다.
나의 성공은, 하고 싶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서 야무지게 해내는 것이다. 내 삶은 남들보다 ‘도전’하는 데 강했다. 다시 말해, 내 주변과 비슷하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내게는 성공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비전은 가족들과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무척이나 안정적인 내 직장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게 나의 비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대충 그냥 쉬우니깐 안주해 버리는 지금의 생활이 자꾸 내 발목을 붙잡는다.
해외나 지방에 여행을 가더라도 요가원을 꼭 찾아본다. 단순한 운동 이상으로 수련으로서의 요가를 좋아한다. 성수동 요가웨이브 TTC 프로그램을 수료했고, 이후에도 새벽 아쉬탕가 100일 수련으로 내 열정과 몸의 한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닿는 데 희열을 느낀다. 최근에 쓴 <청첩장을 열어보지 못하는 아빠>라는 글은 하루 조회수 2만을 기록했다. 언젠가 나도 글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기획 MD를 8년 정도하고 있고 요즘 누구나 아는 유명 연예인이 내가 기획한 옷을 입고 브랜드가 승승장구하는 걸로 보아 이 일에 영 소질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트렌드와 시장 수요를 찾아 상품을 잘 공급하는 것.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 일이 재밌고 보람되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잘 아는데도 겁이 난다. 퇴사가 말이다. 앞으로 일 년 뒤에 발리에 200시간 요가를 하러 떠날 계획이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기도 낳지 않았는데 벌써 육아휴직도 경력단절도 걱정이 된다.
그래서 라이프 리스트 (Life List)를 적기 시작했다. 버킷 리스트와는 조금 다른 의미다. 진정한 나를 찾는 리스트.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바르게 가기 위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것이라. 하나님을 믿어보고 가려한다! 도전!
라이프 리스트 (Life List)
1. 발리에서 국제 요가 자격증 수료하기
2. 초록의 여름, 아름다운 신부가 되는 것
3. 아기를 한 명 또는 두 명 갖기
4. 엄마,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
5. 내가 쓴 글을 모아 책 출간하기
6. 직접 운전해서 아이와 미술관 가기
7. 교회 봉사활동 하기
8. 신랑 생일엔 내가 만든 오마카세 만들어 주기
9. 배우자와 캐나다 여행 가서 미친 짓하고 놀기
10.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