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생일

by 시경

2026년 1월 10일.


서른 한 번 째 생일이다. 생일을 맞아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남편과 조용한 곳에서 푹 쉬다 오는 것. 강원도 정선에 있는 파크로쉬에 왔다. 주말 동안 큰 눈이 내린다는 뉴스에 숙소 예약을 취소해야 하나 걱정을 했다. 요즘엔 눈이 오면 걱정을 한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주희가 얼마 전 파리에 눈이 온 사진을 스토리에 올렸다. 내용은 자기 사무실에 눈이 내린 것에 대해 3가지 반응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집에 어떻게 가나 걱정한다. 두 번째, 비행 스케줄을 걱정한다.(주희는 샤를드골공항에서 일을 한다.) 세 번째, 눈을 밟으며 좋아한다.(=주희) 그래서 나는 주희를 좋아한다. 걱정을 하던 찰나에 그녀를 떠올리고, 그냥 잠이나 잤다. 정선으로 오는 길에 30분 정도 폭설을 만나긴 했지만 무사히 도착했고, 다시 맑게 하늘이 개었다.


큰 창 밖으로 새하얀 눈이 내린 가리왕산을 바라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바라본다. 2층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 공간이 있는데, 그 곳에서 남편은 할 일을 하고 나는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책을 재독했다. 이틀 전, 독서모임에서 나눴던 대화들을 바탕으로 다시 읽는 책은 천천히 씹어 먹는 곶감처럼 내용이 더 쫄깃하게 다가왔다. 새해를 맞아 책을 마구 읽고 있다. 책을 읽고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책을 읽을 때는 요가를 할 때 만큼이나 지금, 여기 온전히 있을 수 있어서 좋다.


여행 준비를 하던 생일 날 아침, 몹시 예민하여 샤워를 하다가도 짜증이 솟구쳤다. 그 이유를 처음엔 헤아리기 힘들었다. 허둥지둥 시간에 쫓겨 채비를 하던 탓이었나? 아니,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팀장의 윤리적인 문제, 팀원들과의 갈등,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겠지. 켜켜이 쌓인 부정이 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간을 어떻게 통과해나갈 수 있을까. 책이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까.


어쨌든 이틀 전에 나간 독서모임은 마음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고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언어를 말했다. 그들에게서 애정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함을 발견했다. 독서모임에 나온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잘 살아가려는 따듯한 의지일테니까. 혼자 읽는 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얼마 전 송구영신 예배에서 품은 생각 중 하나가 세상을 폭 넓게 이해하려는 시선을 가지려 노력하자는 것이다. 올해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또 말하는 것을 실천하려 한다. 세상에 모든 말은 이미 말해진 것이지만, 내 생각으로 입으로 스스로 말할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일테니까. 말을 하자. 그렇게 인용만 하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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