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기억하고 기록해 보는 한 달
2026년 2월 1일 일요일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기록이 더 많아졌다. 기록하는 습관이 다방면으로 나아지고 있다. 하루하루를 아이폰 메모에 간단히 적는 것에서 이제 일기, 브런치, 노션과 아이폰 메모장에 스쳐가는 나의 생각과 하루하루를 붙잡아둔다. 올해 1월에는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 변화에 휩쓸려 간 한 달이었다. 원래도 1월은 바빴다. 새해를 맞아 들뜬 마음으로 일주일이 지나면 내 생일이 찾아온다. 회사에서는 생일 다음 주에 품평이 있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야근을 자주 한다. 올해부터는 새로운 이벤트가 하나 더 늘었다. 시어머님의 생일이다. 우리 가족은 생일을 크게 챙기는 편이 아니었는데, 남편의 가족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어머님 아버님 덕분에 생일도 성대하게 그리고 큰 사랑이 더 충만해진다.
1월의 이벤트들 사이에 개인적으로 특별한 일들이 3가지나 있었다. 첫 번째는, 그동안 독학으로 공부 중이었던 보석감정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맑고 쾌청한 겨울 오전 공기를 맞으며 송파구에 있는 낡은 컴퓨터 학원에서 공부만큼이나 시험도 열심히 보았다.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고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도파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성취의 기쁨을 느꼈다. 왜 보석감정 시험을 공부하느냐. 시할머님과 시어머님은 보석을 다루는 일을 하신다. 그리고 그 일은 직장인인 내가 제2의 직업으로 꿈꾸기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패션 MD 10년 차라는 시간이 통과해 낸 나는 앞으로도 가능한 오래 직장에 다니겠지만, 언젠가는 그만두게 될 직장이라는 생각을 늘 품고 있다. 우리 가족의 안녕을 위해 내 사업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려운 공부도 주말에 틈을 내서 해낸 것 같다.
두 번째는, 친오빠 결혼식의 축사였다. 오빠는 서울에서 친구들과 100명 규모의 호텔 결혼식 한 번, 지방에서 부모님과 어른들은 모시는 결혼식 한 번. 두 번의 결혼식 중 첫 번째 결혼식을 마쳤다. 서울 결혼식에서는 부모님들도 없이 가족은 오직 나와 우리 신랑만이 참석하였다. 오빠에게 축사를 부탁받고, 겨울 동안 찐 살도 조금 빼고, 평소에 잘 사지 않던 예쁜 옷도 사 입었다. 결혼식 당일 날에는 헤어 메이크업도 받아서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으쓱했다. 겨울의 하얏트 호텔은 어여뻤다. 새파란 겨울 하늘과 연한 핑크와 오렌지의 노을빛, 펼쳐지는 서울 풍경이 보이는 호텔에서 식을 올리는 오빠와 새언니가 그날 참 근사했다. 부모님이 오시지 않는 결혼식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축사를 준비했기에 그렇게 눈물이 나올 줄은 몰랐다. 식전 영상이 나오자마자 오빠의 행복한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안녕 오빠, 새언니. 오빠 여동생의 축사라니. 여기 앉아계신 분들이 다들 남매가 참 친한가 봐 생각 중이실 것 같아.
우리가 친한가 생각해 봤는데, 그건 다 오빠가 다정한 사람이어서더라. 어렸을 때 사진들을 봐도 오빠는 항상 내 손을 잡고 있거나 나를 업어주었어. 어렸을 때도 오빠는 참 좋은 오빠였고, 지금까지도 나는 오빠가 있어서 참 든든해.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빠가 스스로를 너무 희생하는 성격이라서 엄마 아빠와 나는 오빠를 늘 걱정해왔어. 하지만 이제 이렇게 착하고 야무지고 예쁜 새언니를 만나서 오빠의 안식처가 생긴 것 같아 정말 다행이야. 결혼을 하고 보니, 아무리 밖에서 힘들더라도 사랑하는 신랑이 있는 집에 오면 어떻게든 힘이 나고 행복해지더라. 새언니와 오빠도 서로에게 쉼과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어. 새언니, 오빠,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줄 거죠?
그리고 오빠, 새언니, 2023년 겨울 우리들이 처음 만난 날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새언니의 조부모님 장례식장에서 오빠와 내가 새언니를 처음 만났고, 그리고 그때는 남자친구였던 우리 신랑이 나를 데리러 왔다가 우리 부모님도 아닌 새언니의 부모님과 처음 악수를 나누던 그 겨울 공기가 나는 그렇게 생생하더라. 그리고 새언니와 오빠가 그다음 해 겨울에 사귀게 되었다고 했을 때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올 겨울에는 둘이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고 하니 하나님의 축복이라 진심으로 감사했어. 오빠, 새언니. 결혼해 보니 정말 좋더라. 오빠와 새언니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고 또 늘 사랑하는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축복할게! 새언니, 우리 오빠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요~
2026년 1월 24일, 오빠의 하나뿐인 동생, 시경이가.
담백하게 썼다고 생각했던 축사였는데, 첫 문장부터 눈물이 터져서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보이고 말았다.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 읽는 동안 오빠보다도 새언니의 눈시울이 붉어져 버렸고, 새언니와 진심이 통한다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나의 부모님 역할까지 해주었던 우리 오빠가 동반자를 만나서 진심으로 축하했다.
세 번째, 그동안 괴로웠던 직장 안에서의 갈등이 해결되었다. 지난 2년 간 나는 팀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팀 안에서 외로웠다. 가장 큰 원인은 팀장이었는데, 팀원들이 팀장을 몹시 싫어하는 한편 나는 팀원들과 팀장 험담에 가담하지 않았다. 같이 점심식사나 티타임을 할 때 늘 험담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니 부정적인 에너지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점점 팀원들과 어울리는 걸 피하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졌다. 인사평가 시즌이 되어 팀장과 팀원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그때는 개인적인 마인드 컨트롤로 견디기 힘들어 정말 이직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팀장이 팀원에 대한 비하발언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는 사실이다. 팀원들이 2년 연속으로 팀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사평가 피드백을 낸 것과 그 사건으로 팀장은 다른 팀으로 이동이 되었다. 조직 개편이라는 물리적인 해결이 이루어지고 나니,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긴장감에 안도했고 그간의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팀원들과 훨씬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고, 조직에 대한 심적인 안정감도 얻었다. 업무를 할 때도 더 가동성이 붙어서 적극적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생겼다. 그동안 견뎌낸 시간들이 무색하게 저절로 모든 게 해결이 되었다.
내 앞의 큰 산을 평지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라는 말씀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