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살까지 치열하게 살기 계획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by 시경
사랑의 조건은 혼자서도 제정신을 유지하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자아의 강인함과 독립성, 온전함을 갖추는 것이다. 이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랑받는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사랑은 자발적 행동으로, 여기서 자발성은 말 그대로 자신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아가 불안하고 나약하면 자기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오늘 아침 눈을 뜨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무기력이 밀려왔다. 나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회사 안에서 사람들과 맞추려 억지웃음을 짓고 이야기를 하고 일을 하여 돈을 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든 말든 신경을 쓰고 싶지 않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하고 외로우며 동시에 나는 타인이 싫다. 어제저녁에는 그 돈으로 퇴근길에 마사지를 받고 집에 왔다. 운동으로 뭉친 근육을 제 때 풀어주지 않아 쌓인 것들이 느껴졌다. 특히 흔히 알고 있는 림프를 만져주실 땐 뭉친 피가 통하는 게 느껴져서 찌릿함이 온몸에 퍼졌다. 맙소사. 내 몸은 어떻게 살아내고 있었나. 마사지를 받고 나니 몹시도 피곤해졌다. 1층 스타벅스에서 말차라떼 시럽 1번 저지방 우유, 그란데 사이즈를 주문해서 주린 배를 달랬다. 온몸에 근육통을 느끼며 금요일 저녁 9시 반부터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떠도 여전히 마사지의 여파가 느껴지고 몸살 기운에 신랑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하,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신랑은 좀 더 자고 쉬라며 이불을 덮어줬지만, 이내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 오늘은 보석학원에 등록하러 가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지난 1월, 보석감정 필기시험에 독학으로 합격하여 시어머님께 보석 사업을 이어받고 싶다고 얘기드렸다. 신랑도 시부모님도 몹시 기뻐하며 나의 공부를 응원해 주셨다. 문제는 실기 시험인데, 유색보석을 감정해 내는 시험에 통과하려면 주말에 학원을 다녀야 한다. 소중한 주말 시간을 앞으로 6달 정도는 공부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하기 전부터 부담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게 정말 돈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이라 당장 학원 등록비와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돈 걱정 없는 미래를 살고 싶고, 직장은 가능한 오래 그렇지만 쿨하게 그만두고 싶은걸.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주말 아침 집청소를 끝낸 다음에 신랑이 차로 판교역에 내려다 주었다. “잘 다녀올게.”


씩씩한 듯 여전히 뚱한 표정을 하고서 양재로 향했다. 배도 고픈 것 같았고, 꽃샘추위 아침 바람에 더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학원은 양재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로 1층 고깃집이 있는 오래된 상가 3층에 위치했다. 쇠로 된 둥근 손잡이 돌리면서 ‘이게 맞나 ‘ 싶었다. 다행히 학원에서 실습 중인 사람들이 몇 명 있었고, 나이 드신 남자 원장님이 교육 상담을 해주셨다. 교육을 담당하는 여자 원장님은 그 간에 내가 몇 번 전화로 괴롭혔기 때문에 이번에는 미리 전화를 하지 않고 왔는데, 마침 오늘은 홍콩 주얼리쇼에 가셨다고 했다. 연세가 많이 드신 듯한 남자 원장님은 연로하심에도 또렷함이 느껴졌다. 여자 원장님의 출장으로 오늘은 수업을 해줄 수가 없다며 죄송해하셨지만, 속으로 난 참 좋았다. ’아싸, 프릳츠 가서 빵 먹어야지.‘


시원하게 등록을 하고서 양재역 프릳츠를 향했다. 프릳츠의 산미 있는 아이스 라떼는 나의 페이보릿이다. 기분이 좋아져서 노트를 펴고서 앞으로 주얼리 사업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적어보았다. 물건을 판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닌 걸 잘 알아서 사업을 시작하는 게 겁이 난다. 그래도 보석은 그 자체만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기에 이를 사고파는 것 또한 진실되다 생각이 든다. 내가 일하고 있는 패션 시장은 거짓 투성이다. 아니, 우리 인생 모두가 소비이고 인간은 소비자라는 사실 자체가 싫다. 그래서 내 사업은 꾸며내고 싶지 않다.


보석을 팔 것이니 보석을 제대로 알기 위한 공부를 한다. 55살까지 치열하게 열심히 살기 위한 내 계획. 돈 걱정 없는 삶을 살고 싶은 이 계획은 어떻게 흘러갈지 운과 내 실행력에 달려 있겠지. 요가하는 사람들이 내 주얼리를 하고 있는 걸 마주하는 날을 상상하며, 삶에 애정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