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발리에 가지 못했습니다

반짝이는 얼음송곳

by 시경

3년 전 추석 연휴에 긴 휴가를 내고 혼자 요가하러 발리에 일주일 넘게 떠난 적이 있다. 요가 강사 자격증(TTC) 수업 수강을 결심했던 때였고, 요가하면 발리, 발리 하면 요가라 생각했던 패기의 그녀는 결국 발리에서 요가(Yoga)를 얻어왔다. 발리가 주는 평온함으로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걸 만끽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힘들게 딴 요가 강사 자격증으로 아직 한 번도 내 힘으로 요가를 나눈 적은 없다. 영혼 없는 요가 수업은 두려워서. 사회 생활에 찌들어 지금은 내 안에 요가가 주는 좋은 에너지가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안다. 내게 요가는 단순한 시퀀스로 짜인 아사나 동작들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아무리 기부 요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내 요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따듯한 숨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나 자신과 또 그들에게 실망을 줄 것 같아 두렵다.


최근에 지인의 인스타 스토리에 뜬 사주 링크에 들어가 나의 타고난 성향에 대해 물어보았다. 내 결과는 ‘반짝이는 얼음송곳‘.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무딘 거야. 선 넘으면 베여. “


세상에나. 내가 이렇게 까칠한 사람이었던가? #완벽주의 #예민한 천재 #까칠 #인간칼날이라는 키워드에 내 마음이 베였다. 인간칼날이 된 나. 발리에 가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부드러워서 말랑해서 그런 에너지가 저절로 나오는 사람이고 싶어서.


지금으로부터 딱 일 년 전, 퇴사하고 발리에 가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일 년을 계획했으니 실행은 3년쯤 뒤가 될지 모른다. 아무튼 아직 나는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그리고 가능한 오래 좋은 회사에 다니면서 아기도 낳고 싶고, 안정적인 생활의 기반을 다지고 싶어졌다. 주변에 결혼을 하고 금방 아기를 가진 이들이 부러웠다.


발리 티켓을 끊는 대신 시할머니부터 내려져 온 보석 사업을 이어받아 나만의 브랜드를 런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업무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에, 주말 또는 평일 아침과 저녁 시간을 내어 사업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 중이다. 우선 가장 가까운 신랑에게 한 달 동안 열심히 만든 사업 계획서를 보여줬다. 그의 반응이 뜨듯미지근하다. 사업 계획서 만드는 일은 회사에서 9년 남짓 해왔던 일이라 내겐 비교적 쉽다. 다들 좋은 ‘아이디어’는 갖고 있다. 문제는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일 만큼은 절대로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리라.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실행할테야.


요가라는 일도 이토록 의지가 있었더라면 그때의 그 에너지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든 수업을 만들어 보려고 했을 텐데, 당시에는 사랑이 더 중요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의 대안이 무엇인가? 그저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드라마 몇 개 보거나 책장을 넘기다 잠자리에 드는 정도가 되겠지. 그게 전부인 인생을 살기에 아쉽다. 직장 생활은 나름대로 즐겁지만, 늘 자유를 원하고 있다. 결국 행복은 내 삶을 내가 얼마나 의미 있게 바라보느냐에 달렸다. 즐거운 순간의 합계가 아니라. 내 삶을 의미 있게 바라보고 싶다.


그게 갓난아이를 키우는 부모일 수도. 밤새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가느라, 잠을 설치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내 삶도 비슷한 모양이길 바란다. 그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삶이 될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을 하면서 브랜드를 키워 가는 재미를 느끼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삶이 될 수도 있다. 2026년 4월 1일 달력에 표시해 둔 발리로 떠나는 날은 명백히 실패했지만, 내 하루하루는 내가 바라는 삶의 모양에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믿는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