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명품의 향연
그를 만나면 뺨을 두 대 갈기겠다. 한 대는 예의없는 이별에 대한 댓가로, 다른 한 대는 지나온 긴 시간 치르지 않았던 이별의 댓가에 대한 가산세로.
헤어지고 이십년이 흐르고 나니 나의 첫사랑이 오랜 동안 가슴앓이를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과거 나는 사랑에 빠져있던 ‘나’를 사랑했던 나르시스트였고, 나에게는 마침표를 찍을 기회조차 빼앗고 떠나간 무심하고 이기적인 ‘그’를 마냥 그리워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인 듯 미화시켜왔다.
이제는 어떤 향도 나지 않는 방향제처럼 그리움, 미움, 후회, 집착으로 점철되었던 시간들이 무색 무취의 딱딱한 딱정이가 되어 가슴한켠에 남아있다. 이 글을 쓰면서 딱지를 이리 들추고 저리 들춰보니 흉은 졌으나 딱히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새살이 잘 자리잡았구나 싶다.
스무살 동아리 방에서 한국말을 쓰면 벌금을 내는 규칙이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시간표를 정해서 새로운 게스트들에게 영어동아리의 규칙을 설명한다. 물론 영어로. 처음 영어동아리를 가입한 계기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의 소개였는데, 영어영문학과를 복수전공할 정도로 영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동창이 없어도 공강시간이면 동아리가 있는 두레관을 찾곤했다. 하루는 텅 빈 동아리실에서 게스트를 기다리느라 심심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창가 소파에 누워있는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반갑고, 갑자기 장난을 쳐보고 싶었다. 가까이 가서보니 어제 인사를 했던 후배인 것같았다(착각). 뒤로 살금 다가가서 “워!!~”하고 놀래켜 깨웠는데, ‘어라’어제 인사를 나눴던 후배가 아니고, 처음보는 사람이었다. 부스스 일어나서 안경을 찾아 끼는데, 딱히 내 타입이라고 하기에 애매했지만, 사랑에 빠졌다. 인정한다. 나는 금사빠였다. 특히, 둘 다 안되는 영어로 대화를 하다보니 서로 뭔말을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유학이 예정되어있고, 교통사고가 나서 치료효과를 기대하며 포스코 센터(체육관)에서 수영을 한다고 했고, 영어 연습을 하려고 영어 동아리에 왔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그가 ‘워드 스마트’라는 유학준비 자료를 준다고 했었고, 내가 달라고 했던 것도 같다. 나에게는 구체적인 결혼의 계획도 유학의 계획도 없었다. 그저 당돌하게 ‘좋아한다’는 고백만 내뱉을 줄 알았지, 그 말의 무게와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2-3개월 후 그는 예정된 유학길에 올랐고, 나에게 국제전화카드를 충전해서 주고 떠났다. 매일 수시간이 넘는 전화 통화는 기본이고, 기념일에는 명품선물을 아낌없이 사주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갓 대학을 입학한 여대생에게 꽃과 고디바 쵸컬릿, 버버리, 코치 백, 시슬리 화장품, 최신유행 핸드폰은 과분하다. 그런데 당시 나는 명품의 향연에 무뎌지고 있었다.
그가 나와의 만남에 회의를 느끼고 있을 때즈음(당시 나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고), 그는 나에게 백화점 쥬얼리 코너로 오라고 했고, 다이아 귀걸이를 사주었다. 이제서야 당시의 그가 또 다른 그녀를 위해 “다이아 반지”를 구매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메불망 고국에서 나신에게 어푸러져 있는 여성(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성의 이별감정이 성가셔 “그만하자”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연락차단을 하고 미국으로 사라져 수개월만에 명동성당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한 그. 비록 그가 돈이 차고 넘쳐서 그의 부재를 달래기 위해 나에게 명품선물을 줄기차게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그녀에게 당부하고 싶다. 네가 빼앗아간 과거의 ‘내 것’이었던 그가 그리 탐스러운 사람은 아니라고. 당신이 잘 다듬어 잘 쓰라고. 머리는 좋을지 모르지만, 이해득실을 따져 저울이 기우는 쪽으로 무자비하게 결단력을 발휘하는 그 날카로운 면에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상처받게 될 수 있음을. 적어도 그 사람은 오랜 기간 곁에 둘수록 결과 윤이 좋아져서 돋보이는 명품과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