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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mune Mar 03. 2024

당신의 이야기를 전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레티파크>의 미덕

1970년 독일 베를린 태생의 유디트 헤르만은 1998년 <여름 별장, 그 후>로 데뷔했으며, 소설집 <단지 유령일 뿐(2003), <알리스>(2009), <레티파크>(2016), 장편소설 <모든 사랑의 시작> (2014), <우리 집>(2021), 자전적 에세이 혹은 픽션 <우리는 서로 모든 걸 말했을 텐데>(2023)를 발표했다.  


<레티파크>를 읽으며 헤밍웨이가 쓴 것으로 알려진(헤밍웨이가 쓴 글이 아닐지도 모르는)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신지 않은 아기 신발을 판다. 는 여섯 단어로 된 소설이 떠올랐다. 단 한 문장으로 사건과 그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을 상상해 볼 수 있으며 그 상상 끝에서 독자는 개별적인 감정을 만난다. 여기 소개되는 짧은 글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유디트 헤르만의 <레티파크>는 17개의 초단편 소설들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가장 짧은 소설의 경우 단 6페이지에 끝나기도 하는데, 독자는 사건의 기승전결 전체를 순서대로 읽을 수는 없고 다만 사건의 어느 한 부분(결정적이거나 때로는 그렇지 않은)을 소개받을 뿐이다. 그러나 작가가 제공하는 짧은 글로 이야기 전체를 조망하거나 상상해 볼 수 있다. 그것이 이 소설집의 미덕이자 다소 장황한 긴 글들 가운데 돋보이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짧은 글들 중에서도 가장 짧은 첫 번째 소설은 단 여섯 페이지로 끝나는 첫 번째 소설 <석탄>이다. ‘우리’라는 화자와 어린아이 빈센트, 그리고 빈센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등장하는 글로, 커피를 마시고 석탄을 나르는 단순한 상황과 함께 열다섯 살처럼 행동하는 네 살 빈센트의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게 된 사연을 담담한 문체로 소개한다.


빈센트의 어머니는 사람이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그녀는 사람이 부서진 마음 때문에 죽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산 증거였고, 그녀는 사랑 때문에 자기 안에 틀어박혔다. 그것이 빈센트의 평생을 좌우할 거라고 생각하니 이상야릇했다. 우리는 빈센트의 작고 꼬질꼬질한 두 손에서 석탄을 받았다. 마치 성체처럼. (20)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미 일어나 버린 비극적인 사건과 비극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화자인 ‘우리’의 관점이 담담하고 건조하다. 독자는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그것이 다른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거라는 이상야릇한 감정에 공감하며 다음 소설을 읽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상태가 된다.


두 번째 소설 <페티쉬>에서는 떠난 사람(카를)과 남은 사람(엘라) 그리고 남자아이가 등장한다. 다른 소설 속에서 우리는 흔히 카를이 주인공인 엘라를 왜 떠났는지, 혹은 무슨 일로 사라진 건지, 두 사람의 주인공 사이의 관계나 사건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페티쉬>에서는 카를의 빈자리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남자아이가 있다. 어쩌면 이 글의 주인공은 카를이 떠나고 남겨진 엘라의 주위를 감싸는 분위기 자체 일 것이다. 누군가가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의 공간은 조금은 쓸쓸하다. 하지만 남은 이를 위해 피워놓은 모닥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혹여 떠난 이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 장소를, 상황을 모르는 남자아이가 남은 이를 맴돌며 환기하는 소설의 상황이 쓸쓸하다고만 하기에는 약간의 여운과 활기가 남아있다.


 모닥불은 꺼졌다. 엘라와 남자아이는 장작을 전부 태웠다. 그녀는 카를이 오늘도 돌아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그럼에도 자신이 머무를 경우를 대비해서 새 장작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34)


이 소설집의 소설들 중 가장 긴 편에 속하는 <어떤 기억들>에는 그레타와 모드가 등장한다. 처음 그들의 관계는 집주인과 세입자였지만, 육 개월의 시간 동안 세입자 모드의 돌봄이 그레타에게 제공된다. 여행을 앞둔 젊은 모드가 남겨질 노인인 집주인을 마음 쓰고 있는 관계, 단순한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일 수 있을까.


 그냥 그렇게 됐다. (134)


이 소설에서 ‘그냥 그렇게 된’ 사건은 모드가 그레타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 것인데, 그레타의 방대한 책장에서 책을 꺼내와 읽어주는 일이다. 이상하게도 이 짧은 문장이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일에 인과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다. 그냥 그렇게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른 평범한 이야기들에서 등장인물들이 인과, 기승전결에 묶여있다면, <레티파크>의 등장인물들은 주로 ‘그냥 그렇게 되는’ 편이다.


책을 읽나요, 그레타는 물었다. 그녀는 모드를 보지 않으면서 지나가듯 그리고 오히려 무심하게 물었다. 만나는 사람과 어떤 복잡한 정신병리학적 관계를 맺고 있어서 여기서 문을 쾅 닫는다든지 울면서 내 부엌 식탁에 앉아 있는다든지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나요. 무슨 일을 해요, 일을 하긴 하나요? 노인과 관계를 맺어 본 적이 있나요? 마약을 하나요. 동아시아의 명상이라든지 뭐 그런 걸 하나요. 저녁 식사 전에 손을 씻나요? 인생을 즐기나요. 본인이 가진 것을 소중하다고 생각하나요? 본인의 인생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나요? (129-130)


방을 구하는 모드에게 집주인인 그레타가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다. 다시 읽어보니 세입자에게 던지는 질문인가 싶다가도 동거인에게 던지는 질문이구나 싶다. 질문에는 걱정도 있고, 호기심도 있고, 기대도 있다. 어쩌면 모드가 아닌 다른 누가 왔어도 같은 질문을 했을 테고, 방을 내어줬을지 모르는 그레타의 질문은 이 소설집만큼 예상할 수 없고, 추측할 수 없다.


작가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레티파크에 대하여>라는 짤막한 서문을 남겼는데, 그 글에서 “앞서 장황하고 복잡하며 조금 어두운 장편 소설을 썼는데 그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신경이 곤두섰다. 레티파크에 실린 이야기들을 쓰는 것은 뭔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과 같았다. 다시 짧은 텍스트들로 돌아갈 수 있어 홀가분한 기분이었고, 이야기들은 가볍고 경쾌하게 절로 써졌다.”라고 밝히고 있다. 소설들을 읽어보면 소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 배경이 등장하는데,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한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세상 어딘가에 꼭 존재할 것만 같은 사람들, 상황, 배경이라서 작가의 말처럼 ‘안도의 한숨’ 또는 ‘홀가분한 기분’ 같은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장황하고 어둡지 않은, 간략하지만 자연스럽고 단정한 느낌의 문장들이다.


(작가가 말하는) ‘장황한 글’ 읽기에 약간의 권태기를 만났거나, 긴 호흡의 소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거나, 짧은 글의 여백과 여운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봄직 하다. 글은 짧지만 글에 담뿍 묻은 각각의 분위기와 감정을 털고 헤어 나오기엔 글을 읽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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