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
일단 아웃풋(글)이 나오려면 인풋이 있어야 한 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 그동안은 수많은 이야기들 특히 나의 경우 직업상 영화를 인풋 소재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 영화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매력적인 미디어이고, 예술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수작들도 많다. 그게 바로 내가 영화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고, 십수 년 동안 영화를 공부하고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등 내 시간을 할애해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를 ‘쓰기’의 인풋으로 삼기에는 다소 한정적인 데다, 자본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 제한적인 미디어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무려 1800년대 말 시작된 동(움직이는)영상은 기술적인 면에서 빛나는 발전을 이루어 내어,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대부분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현란해지면 현란해질수록 거기서 건져 올릴 인풋 거리는 제한적이고, 흔히 말하는 ‘볼거리’가 충만한 킬링타임용 미디어로 전락하기 일수였다.
공허함으로 시작된 독서
2020년 초, 그러니까 사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내가 너무 엉망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분(현실 자각 타임)이 조용히, 하지만 강렬하게 찾아왔다. 코로나 시대에 사직한 채로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절박해서 모두 자는 시간에 안 자기를 선택해버리고 낮엔 카페인에 절어 엉망진창으로 사는 것을 반복하다가,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자각 끝에 필요에 의해 책을 집어 들었고 넷플릭스를 끊었다. 그 필요라는 것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내 안으로 향하는 인풋이 없음에 지독한 공허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 읽은 책들은 말 그대로 중구난방이었는데, 일단 엉망인 일상에 자극을 주고자 자기 계발서 카테고리의 시간관리와 습관에 관한 유명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간 러닝타임이 2시간 안팎인 영화에 일하는 시간과 여가시간을 모두 할애하느라 읽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쉬게 되니 여가시간에도 ‘보는 일’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질릴 만큼 많이 봤으니까.
전자책과 오디오북
한편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던 전자책과 오디오북의 미덕과 쓸모를 조금 깨닫게 되었다. 평상 시라면 계속 종이책을 선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육아를 병행하는 독서에서는 종이책으로만 읽는 것은 한계가 있었는데, 책을 듣거나 전자책으로 틈틈이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자기 계발서로 시작해 소설, 에세이, 경제서 등 원서를 포함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특히 원서를 읽을 때는 오디오북이 흐름을 놓치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튜브와 각종 플랫폼에 오디오북 파일이 올라와 있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고, 전자책을 구매하거나 대여할 수 있는 플랫폼도 생각보다 다양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읽지 않고 보는 동안 읽는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닥치는 대로 여러 권을 동시에 읽다 보니 정신이 없어 노션에 읽은 책을 정리했던 것도,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소위 ‘모닝페이지’라 불리는 다시 읽지도 않을 잡글을 게워내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읽는 일은 때로 즐겁고 때고 졸리고 지난하지만 세기를 걸쳐 증명된 바 있는 콘텐츠의 검증된 보고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 왔듯 나도 그 안에서 내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콘텐츠는 쓰는 행위를 통해 그리고 읽는 행위를 통해 정리되고 수렴되고 발전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