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emune Jul 27. 2022

내 안의 콘텐츠를 발견하는 법 3: 그리기

손이 하는 일은 의심하지 않는다


아이가 끼적이기를 시작하면서 그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소위 ‘빈 도화지 증후군’이라 불리는 주저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거침없는 손놀림은 나로 하여금 그리기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대단한 걸 그리고자 함이 아니라 마치 피아노를 치기 전에 손을 풀기 위해 하농(Hanon)을 치듯이, 데생을 그리기 전에 선긋기를 하듯이 어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일종의 리추얼 같은 그리기였다. 당연히 목표한 결과물은 없었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보고 1-2분 만에 크로키를 하거나 곡선을 그리고 싶을 때는 왼손을 보고 그리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이 무슨 미덕이 있는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손이 하는 일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손이 하게 놔두는 식의 그리기였다.



두들링(Doodling)

빈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꽤 마음을 써야 하는 부담스러운 일인데, 아이를 보며 나도 저렇게 쉽게 그리고 싶다고 바라게 되었다. 아침에 잡생각을 게워내는 모닝페이지처럼 혹은 틈날 때 읽거나 듣는 오디오북처럼, 멈춰진 곳에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종이와 연필 그리고 간단한 화구를 곁에 두었다. 물론 아이가 쓰는 크레파스와 색연필, 물감 등도 훌륭한 도구여서 어떤 날은 함께 그리기도 하고 그려달라는 걸 그려주기도 한다. 별거 아닌 그림에도 “와! 엄마 진짜 잘 그린다”라는 칭찬을 들을 때면 괜히 으쓱해져서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된 것처럼 착각을 하기도 한다.



콜라주(Collage)

그림은 단순히 빈 종이에 연필이나 색이 있는 도구들로 그려내는 것에 한정을 두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내가 영상을 보고 있거나 눈으로 다른 것을 보고 있을 때, 노는 손에 연필을 쥐어두면 손이 알아서 두들링 하게 둔다. 일종의 낙서라고 할까? 그 낙서는 점점 발전되어서 어느 날 콜라주에 이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콜라주만 하는 노트를 마련했다. 각종 스티커나 라벨, 잡지, 엽서, 포장지 등등 모든 것이 콜라주의 재료가 될 수 있어서 풀만 있으면 손을 콜라주 하며 놀게 두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 콜라주 노트는 벌써 절반을 지나 후반부를 달려가고 있다. 잡글을 게워내는 모닝페이지 유선노트처럼 이 모든 페이지를 다 채운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지만, 나는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미지와 이미지가 더해져서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편견을 없애고, 빈 도화지를 바라보는 마음에도 두려움보다 호기심과 창조성을 채워 놓을 수 있다면, 아무리 하찮은 선긋기나 두들링, 콜라주라도 내게는 어떤 리추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제2의 직업을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잘 모르겠다. 곧 태어날 아이는 배 속에서 힘차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고, 5살 아이는 바이러스가 충만한 세상과 싸우며 사회생활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아이 둘과 함께하는 삶은 나도 처음이어서 얼마나 많은 자기 계발과 성찰을 동반해야 새로운 직업에 안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오늘도 읽고, 쓰고, 그리고 생각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안의 콘텐츠를 발견하는 법 2: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