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지 못한 자의 변명
지난여름 아이를 가진 몸으로 글을 써보자 야심 차게 결심했을 때는 ‘꾸준함’ 그 아름다운 미덕을 지키려 했었다. 잘하는 건 없어도 꾸준히 할 수는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하지만 (변명 시작) 약간매운맛 정도일 거라고 예상했던 오랜만의 현실 육아는 예상외로 불닭 매운맛이었다. 잠잘 시간이 부족하니 정신이 말짱할 리 없고, 그런 정신상태가 되면 잠깐의 여유시간이 생겨도 과일 터트리는 게임이나 하고 앉아있지 ‘아 내가 꾸준히 글을 쓰기로 했었지’하며 책상 앞에 앉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식사시간도 일정치 않아 먹을걸 입안으로 욱여넣으면서도 한 손으로 인스타그램을 살펴보고 있으니, 사실 시간이 없어 글을 못 쓴다는 말은 게으른 자(나)의 변명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꾸준함’이란 모든 면에서 손해 볼 것 없는 덕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 참 지켜내기 힘든 것이다. 꾸준히 글을 쓰고 싶어 목, 토 오전 7시에 “쓰는 사람”이라는 알람을 설정해두었다. 핸드폰에 알람이 울리는 목요일 토요일 오전마다 잠깐 뜨끔했지만, 곧 다시 현실 육아가 기다리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현실로 빨려 들어가곤 했다. 아이의 울음소리,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챙기다 보면 글쓰기가 뭐야, 꾸준한 게 뭐야, 커피 한잔의 여유가 뭐야, 모든 게 아득해지고 당장 눈앞에 펼쳐진 타스크를 해결하는 데 동동거리다가 해가 저물고 만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게 핑계이며 이 모든 걸 이겨내고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꼭 글이 아니어도 꾸준히 정성 어린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도 있을 테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자책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도 꼭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게 글쓰기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직 백일도 되지 않은 작은 아기를 보고 있노라면 내 모든 글은 아기에게 양보해도 괜찮을 것만 같다. 지금 나의 모든 소재이자 주제인 작은 대상이다. 하지만 먼 미래에 내가 좀 더 단단한 사람으로 이 아이를 사랑하고 응원하려면 나 먼저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야 하고, 그것은 나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매일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 때 조금씩 그 실체에 다가설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더더욱 나를 직시하고 격려하는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고, 또 혼자만의 이 시간을 단념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내 앞에 널려있는 일거리(빨래, 설거지, 젖병 소독, 청소 등등)가 눈과 생각을 사로잡아 언제 그럴싸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잡글을 남기는 까닭은 내 마음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잊지 않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