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캐던 소년

마냥 밝아보이던 그 땅의 실체

by 시나브로



대나무숲이라는 대학교 페이지를 기억하는가?


유명 밈 등의 기원이기도 했던 페이스북 페이지이다. 분명한 문화의 한 흐름이었고, 대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미디어였다.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로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대나무숲은 조금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가정 형편으로 인해 시골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 부모님은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서울에 계셨고, 나 혼자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묵었다. 처음에는 많이도 울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잘 돌봐 주신 덕에 어긋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교장선생님이시던 할아버지와 교회 권사님인 할머니는 나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조금만 잘못해도 크게 혼날 것 같은 아우라를 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 있었다. 밤에 늦게 들어온다면 할아버지는 아직 밖이신지, 할머니는 교회에 계신지 확인을 한 후에나 들어갔고, 몰래 들어오다가 걸리면 회초리를 맞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이 ‘사랑의 매’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할아버지는 항상 밖에 나가 계셨기에 자연스레 할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할머니를 따라다니는 건 고되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밭을 일구기도 하고, 소에 여물을 주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중에 가장 기억나는 장소는 대나무숲이다.




주말 아침마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불러 집 5분 거리에 있는 대나무숲으로 데려가곤 했다. 죽순을 캐기 위해서였다. 물론 나는 죽순을 캐지 않고 근처에 떨어진 대나무를 주워 무사놀이를 하곤 했다. 가끔은 만화 캐릭터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학교에서 사이가 안 좋은 아이를 상상하면서 마구 휘둘렀던 것 같다.


대나무숲의 구조는 참 신기하다. 뿌리가 넓게 퍼지지 않아서일까? 보통 빽빽하게 서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해가 쨍쨍해도 대나무숲에만 들어가면 밝지도 어둡지도 않고 놀기 적당했다. 눈앞에 펼쳐진 초록 세상은 조성모가 찍은 광고처럼 상큼했다.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밤늦게까지 옆 동네 친구 집에서 놀고 돌아오는 길, 늦게 가면 또 혼날 것이라는 생각에 집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대나무숲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 길로 쭉 직진해서 가면 집에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낮에 경험했던 상큼한 숲만 떠올리며 어둠의 대나무숲으로 들어갔다.


대나무숲으로 들어가 열 발자국쯤, 나는 어느새 한 치 앞도 안 보이게 되었다.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출구 또한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끝일지는 몰랐지만 옆이나 뒤는 돌아보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얼굴에서 흐르는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도 모른 채 열심히 걸었고, 결국 숲의 끝에 도달했다.


숲 끝에서 바로 옆집 친구가 보였다. 재빠르게 그쪽으로 달려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대나무숲이 페이스북 이곳저곳에서 보이기 시작했을 때, 옛 기억이 절로 떠올랐다.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어렸기에 느낄 수 있었던 그 감정들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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