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실패보다 조금 더 높이
2008년, 나는 중국에 있었다. 인터넷으로 어떤 사이트를 보고 있던 내가 떠오른다.
대학 때 친구와 “우리나라 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꿈을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보고 있던 사이트에는 그 꿈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아니,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2009년, 그 꿈의 공간에 첫 발을 내딛었다. 번역을 공부하러 들어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동경하던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당시 수업 과제로 번역하고 있던 작품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난 학생들은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패기 있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작품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는가?”하는 질문이었다. 한 작가님은 술자리에서 종종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답하셨다. 또 다른 작가님은 단편마다 그 이야기를 바칠 사람을 떠올리며 글을 쓰신다고 했다.
나는 그런 대화가 신기하고 설렜다. 그런 시간은 항상 좋았다.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작품을 어떻게 읽었는지, 어떻게 옮길 것인지 이야기하는 시간.
설렘과 재미도 있었지만,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았다. 아니, 훨씬 더 많았다. 우선 주어지는 과제를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는 괴로움이 컸다. 내 눈에도 한참 모자란 결과물을 꺼내어 지적을 받고, 나보다 더 젊고 유능한 사람들과 비교당해야 한다는 사실도 나를 괴롭혔다. 간신히 견딘다는 심정으로 강의실에 앉아 있다가 혼자 지하철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쏟던 날도 많았다.
나는 그곳에서 두 번의 수업을 들었는데, 두 번째 수업에는 ‘도를 닦는다’는 자세로 임했다. 여기서 내가 잘 못하고, 지적 받는 건 당연한 거야, 일일이 속상해하지 마. 주문처럼 그런 말을 되뇌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나를 괴롭혔을까? 그냥 하고 싶으니까? 왜 하고 싶었을까? 그 일이 좋아서? 그렇다. 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좋았고, 잘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힘들었다. 내 생각은 차차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이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두 차례 수업을 들으며 한계를 절감했으면서도 무려 5번이나 더 시험을 보았다. 기대하고, 시험을 보고, 떨어지고,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마지막 시험을 보았을 때는 기대감이 더 컸다. 어려운 고비인 필기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면접에서 떨어졌다. 결과 발표를 접하고 조금 울었다. 그때서야 포기할 수 있게 됐다. 여기까지다. 이만하면 됐어. 그렇게 나를 그만 괴롭히기로 결정했다.
줄기찬 도전과 좌절, 포기의 여정을 겪으며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첫째,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불어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내가 원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원하지만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일정에 쫓기면서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라는 생각이 들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상황에든 할 수 있는 일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설령 포기일지라도.
둘째, 사람들을 만났다.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제일 힘들다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 봄, SNS에서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함께 공부한 동료로부터의 메시지였다.
그는 그때 자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힘을 내어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겠다고 썼다. 그의 새로운 목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응원한다는 답을 보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을 떠올리자 함께 웃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자 기억 속의 공간이 좀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한때 나와 같이 노력하고 고생했던 사람이 또 한 번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그래, 나도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부지런히 그 길을 가야지. 언젠가 친구를 직접 만나 그때 메시지를 보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셋째, 마음에 약간의 근육이 더 붙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켈리 클락슨의 <Stronger>에 나오는 가사이기도 하고, 니체가 한 말이기도 하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모든(대부분의)고통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한다.
피티를 받을 때 내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 선생님은 늘 “좋은 거예요” 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아픈 게 좋은 거라고? 어째서? 그렇게 몸에 통증을 느끼면서 근육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음의 근육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상처를 받고 아파한다. 아픔이 가라앉으면서 근육이 생긴다. 이렇게 생긴 근육이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작은 아픔쯤은 가볍게 지나가고, 좀 더 큰 아픔도 더 잘 견딜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게 하나의 글감이 더 생겼다.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잘 하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계속 매달려 있었던 경험을 돌이켜 보니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저마다 그 고통을 초월하는 방식이 있다. [.....] 글을 쓰는 사람은? 바로 글을 쓰는 것으로 그 고통을 초월하려 한다.”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나는 실패를 했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경험을 글로 옮기고 있다. 어쩌면 나는 지난날의 실패보다 조금 더 높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