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빈 Mar 20. 2021

실패의 경험을 글로 옮기기

지난날의 실패보다 조금 더 높이


2008년, 나는 중국에 있었다. 인터넷으로 어떤 사이트를 보고 있던 내가 떠오른다.

대학 때 친구와 “우리나라 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꿈을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보고 있던 사이트에는 그 꿈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아니,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2009년, 그 꿈의 공간에 첫 발을 내딛었다. 번역을 공부하러 들어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동경하던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당시 수업 과제로 번역하고 있던 작품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난 학생들은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패기 있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작품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는가?”하는 질문이었다.  작가님은 술자리에서 종종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답하셨다.  다른 작가님은 단편마다  이야기를 바칠 사람을 떠올리며 글을 쓰신다고 했다.


나는 그런 대화가 신기하고 설렜다. 그런 시간은 항상 좋았다. 문학 작품을 읽고  작품을 어떻게 읽었는지, 어떻게 옮길 것인지 이야기하는 시간.


설렘과 재미도 있었지만,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았다. 아니, 훨씬  많았다. 우선 주어지는 과제를 제대로 소화할  없다는 괴로움이 컸다.  눈에도 한참 모자란 결과물을 꺼내어 지적을 받고, 나보다  젊고 유능한 사람들과 비교당해야 한다는 사실도 나를 괴롭혔다. 간신히 견딘다는 심정으로 강의실에 앉아 있다가 혼자 지하철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쏟던 날도 많았다.


나는 그곳에서 두 번의 수업을 들었는데, 두 번째 수업에는 ‘도를 닦는다’는 자세로 임했다. 여기서 내가 잘 못하고, 지적 받는 건 당연한 거야, 일일이 속상해하지 마. 주문처럼 그런 말을 되뇌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나를 괴롭혔을까? 그냥 하고 싶으니까? 왜 하고 싶었을까? 그 일이 좋아서? 그렇다. 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좋았고, 잘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힘들었다. 내 생각은 차차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이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두 차례 수업을 들으며 한계를 절감했으면서도 무려 5번이나 더 시험을 보았다. 기대하고, 시험을 보고, 떨어지고,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마지막 시험을 보았을 때는 기대감이 더 컸다. 어려운 고비인 필기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면접에서 떨어졌다. 결과 발표를 접하고 조금 울었다. 그때서야 포기할 수 있게 됐다. 여기까지다. 이만하면 됐어. 그렇게 나를 그만 괴롭히기로 결정했다.


줄기찬 도전과 좌절, 포기의 여정을 겪으며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첫째,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불어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내가 원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원하지만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일정에 쫓기면서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라는 생각이 들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상황에든 할 수 있는 일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설령 포기일지라도.


둘째, 사람들을 만났다.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제일 힘들다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 , SNS에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함께 공부한 동료로부터의 메시지였다.


그는 그때 자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힘을 내어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겠다고 썼다. 그의 새로운 목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응원한다는 답을 보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을 떠올리자 함께 웃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자 기억 속의 공간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한때 나와 같이 노력하고 고생했던 사람이   번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그래, 나도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부지런히  길을 가야지. 언젠가 친구를 직접 만나 그때 메시지를 보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셋째, 마음에 약간의 근육이 더 붙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켈리 클락슨의 <Stronger>에 나오는 가사이기도 하고, 니체가 한 말이기도 하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모든(대부분의)고통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한다.


피티를 받을  내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 선생님은  “좋은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아픈  좋은 거라고? 어째서? 그렇게 몸에 통증을 느끼면서 근육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음의 근육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상처를 받고 아파한다. 아픔이 가라앉으면서 근육이 생긴다. 이렇게 생긴 근육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작은 아픔쯤은 가볍게 지나가고,    아픔도   견딜  있게 해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게 하나의 글감이  생겼다.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하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계속 매달려 있었던 경험을 돌이켜 보니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저마다 그 고통을 초월하는 방식이 있다. [.....]  글을 쓰는 사람은? 바로 글을 쓰는 것으로 그 고통을 초월하려 한다.”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나는 실패를 했고 고통스러웠지만,  경험을 글로 옮기고 있다. 어쩌면 나는 지난날의 실패보다 조금  높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닝페이지는 계속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