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페이지 다시 읽기- 2011년편
1. 2011년의 질문
<쉐이크>에 나온 질문 중 ‘처음 만난 이와 사귀고 싶을 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어떤 내용을 들려주겠습니까? 왜 하필 그 대목인지 적으시오’ 하는 게 있었다. 오늘은 그걸 생각해보면 좋겠다.
-2011년 9월 16일
나의 첫 모닝페이지 노트는 2004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8년여의 시간을 함께 했다. 며칠 쓰다가 끊기고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오고 그러다 또 멈추고....... 이 첫 노트는 내가 모닝페이지에 입문해서 적응한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금은 혼자 하기 어려운 습관을 함께 하는 방법, 예를 들어 워크숍이나 모임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어서 첫 단계를 더욱 효과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모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여정에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그동안 혼자 아등바등 애써서 결국 이렇게 해냈구나’라고 느낀다.
나다움을 인정하는 것, 나라는 사람이 뭔가에 적응하고 뭔가를 이루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모닝페이지 쓰기의 값진 성과라고 생각한다.
모닝페이지를 써 오면서 이룬 성과를 좀 더 촘촘히 살펴보고 정리하고 공유하기 위해 1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의 기록과 마주 앉는다.
새삼 11년 전의 질문을 들여다본다. 당시 이런저런 고민을 하긴 했지만 아쉽게도 딱히 이거다 싶은 답을 찾지는 못했다. 실은 2022년 가을에 접어든 지금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 들려줄 성싶은 내 인생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만난 사람에게 선뜻 내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는 글을 써보는 것은 재미있을 것 같다. 정말 그럴지는 글을 다 써봐야 알겠지만.
질문을 보다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쉐이크>를 다시 읽어보았다. <쉐이크> 라는 책은 김탁환 작가의 글쓰기 작법서다. 책에서 위의 질문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대목이 있어 인용해본다.
낯선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면? 특히 그 사람이 흉악범이고, 그 방에 나를 죽일 흉기가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방을 나와서 차라리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시겠다고요? 이렇게 상황을 바꿔볼까요. 그 방에서 피곤하여 잠이 들었는데 문득 깨어보니 흉악범이 밤에 들어온 겁니다. 흉악범은 흉기를 침대 밑에 두고 겉옷을 벗은 뒤 여러분이 잠든 침대로 파고듭니다. 여러분은 편히 흉악범과 잠들 수 있겠습니까?
- 김탁환의 <쉐이크> 중에서
흉악범과 편히 잠들 수 있겠느냐고? 그럴 리가. 나 역시 도망치기 바쁠 것 같다. 작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한다.
제가 만들고 싶고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식인종과 처음 만나서도 편히 잠들 수 있는 힘’을 지닌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하면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흉악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식인종이 등장한다. 책에서 제시된 상황은 고전 <백경>에 나오는 설정이라고 한다. 도서관에 온 김에 아예 <백경>까지 읽어보기로 한다.
수업에서 허먼 멜빌의 작품을 배운 적도 있고, <백경>을 원서로 읽으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대의 내가 느낀 감상은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무슨 말 하는지 잘 와닿지 않는다’ 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앉은 자리에서 <백경>을 다 읽고 말았다. 무척 흥미로웠을 뿐 아니라 이스마엘이 멋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스마엘의 멋짐이 폭발하는(?) 장면을 살펴보도록 한다.
나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에게는 어딘가 의연하고 당당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잠시나마 그를 두려워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말했다.
“아저씨는 이제 가셔도 좋소. 이젠 진짜 잠을 자야 할 시간이네요."
퀴퀘크는 내가 침대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시트를 뒤로 젖히고는 한편으로 물러났다. 나는 촛불을 끄고 늦은 잠을 청했다. 그날 밤처럼 기분 좋게 잔 적은 일찍이 없었다.
- 허먼 멜빌, <백경> 중에서
식인 추장의 아들인 퀴퀘크는 이스마엘과 딱히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사실 평범한 사람이 식인부족과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야만스럽다고 느끼거나 두려워하지 않을까?
하지만 두 사람은 결정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인생에서 추구하는 바가 비슷했던 것. 먼저 이스마엘의 입장부터 들어보겠다.
나는 퀴퀘크의 행동에 내심 당황하고 있었지만 결코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는 않았다. 그래서 기꺼이 나무로 된 조각품을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그 코에 입맞춤을 했다. 오랜 시간 배를 타고 다니면서 이 세상의 다양성을 배우려고 하는 내가, 육지를 떠나기도 전부터 편협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 이스마엘은 세상의 다양성을 배우기 위해 바다로 나왔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그 다양성의 한 면은 전혀 다른 가치관과 풍습을 따르는 사람과 한방을 쓰며 그 사람과 친구가 되는 일이었다.
이스마엘 역시 두려움을 느끼고 당황하기도 하지만 퀴퀘크의 방식을 존중하려 노력한다. 퀴퀘크에게서도 유사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퀴퀘그는 자기가 만난 서양 선원들이 타고 있던 배의 크기와 화려한 장식을 보고 그 들이 자기 부족보다 우월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고래잡이배를 탄 지 한 두 해가 지나자, 자기 부족 사람이 다른 부족 사람들만큼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그러한 인식을 버리게 되었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들어가 추장이 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나는 아직 바다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퀴퀘크 역시 이스마엘처럼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성장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야기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이스마엘과 퀴퀘크는 서로에게 뜻밖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더 넓고 낯선 세상에서 버팀목이 되어줄 인연을 이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낯선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도) 있게 해준다.
2. 2022년의 대답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처음 만난 이와 사귀고 싶을 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어떤 내용을 들려주겠습니까?’
처음에는 모닝페이지를 십수년 넘게 써 온 자체가 나의 인생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모닝페이지를 오래 써 온 자체로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모닝페이지를 왜 쓰는가?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일까? 이와 같은 질문을 좀 더 깊이 밟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먼저 모닝페이지를 쓰는 이유는 바로 답할 수 있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모닝페이지는 내게 더 이상 성장을 위해 필요한 도구이자 애써 이루고자 하는 노력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그 자체로 즐거운 행위다.
또 하나의 질문,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무엇을 얻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이 글을 쓰면서 실감하는 중이다.
2011년의 제법 거창해 보이는 화두 ‘내 인생의 이야기’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지 못하고 술술 글을 쓰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답답하고 속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졌다.
질문을 곱씹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면서 나라는 사람을 좀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와닿지 않았던 책을 즐겁게 읽는 경험을 하면서 나의 변화, 어쩌면 성장 같은 것도 엿보았다.
좋은 질문을 던지면 좋은 답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좋은 답이란 명쾌하고 딱 떨어지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른 관점을 배우게 되었다.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해도 괜찮다. 지금 내 눈에 부족해 보이는 글이어도 괜찮다. 질문을 던지고 안 써지는 글을 꾹꾹 눌러 써보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느껴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게는 인생의 이야기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대놓고 묻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하는 마음을 품고 싶다.
당신에게는 인생의 이야기가 있나요? 그렇다면 제게 들려주시지 않겠어요? 혹시 우리가 이스마엘과 퀴퀘크 버금가는 친구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모닝페이지를 쓸 때는 주로 보이차를 마신다. 하루 중 가장 충만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