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고요한 방을 찾아서

모닝페이지 다시 읽기- 2012년편

by 루빈

모닝페이지 다시 읽기 2011년 편에서는 내 인생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밟아보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생 이야기를 이번 생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까? 모닝페이지를 다시 읽으면서 글을 쓰는 과정에 인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어쩌면 이 과정 자체가 인생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어본다.


2012년 편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2012년의 기록을 정리한 문서를 읽다가 문득 다음과 같은 구절에 눈이 갔다.


내 마음속의 고요한 방- 내소사의 풍경, 갓 태어난 조카 옆에서 낮잠 자기, 눈 내린 아산 노천 온천의 풍경.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이완.

- 2012년 1월 27일


어떤 책에서인가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기만의 고요한 방이 있다는 말과 비슷한 내용을 읽고, 나만의 고요한 방을 찾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 같다. 문제는 어떤 책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요한 방’이라는 주제는 안 되겠구나 싶었는데 불쑥 하워드 가드너의 책에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이 스쳤다. 그렇게 하워드 가드너의 <통찰과 포용>이라는 책에서 고요한 방의 첫 실마리를 찾았다.


**리더는 자신의 공동체와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접촉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리더는 자신의 내면에서 변화하는 사고, 가치, 전략 등을 알아야 한다. 즉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투쟁이나 사명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런 습관을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던 사실에 빗대어 ‘산 정상에 오르기’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매일 산책을 했던 드골의 경우처럼 리더가 갖는 성찰의 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리더의 삶에서 매일 혹은 수개월 혹은 수년간의 고립된 시기를 갖는 것은 대중에게 집중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


나는 리더가 될 생각이 없고, 그런 그릇도 못 되는 것 같다. 지금도 이런데 10년 전이라면 리더의 삶에 더더욱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리더를 언급한 내용을 적어 두었을까? 지금이라면 리더뿐 아니라 나 같은 프리랜서도 ‘자신의 내면에서 변화하는 사고, 가치, 전략 등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프리랜서도 아니었다 (돌아보면 그때도 프리랜서였는데 내가 프리랜서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과 성찰의 시간에서 비롯되는 힘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기보다 ‘산 정상에 오르기’라는 은유에 끌렸다는 쪽이 가깝겠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면서(혹은 쓰려고 노력하면서) 나만의 작은 고개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산 정상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그런데 산 정상과 내면의 고요한 방이 무슨 상관이지? 2011년의 구절에 영향을 준 또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이번에도 바로 무슨 책인지 떠오르지 않았는데 수녀님이 쓴 책이라는 기억만은 뚜렷했다. 2011년, 12년 즈음 읽은 수녀님이 쓰신 책이 뭐였지? 헛웃음이 날 정도로 뜻밖의 책이었다. 바로 <마더 테레사의 단순한 길>이다.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사셨던 성 카타리나께서는 스물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기도하고 침묵하려 할 때 저와 똑같은 곤란을 겪으셨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의 방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말을 쓰셨지요. 그 안에서 기도하고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말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동굴 속의 은수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특별한 장소를 찾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


이 글을 접하고 왠지 두근거렸다. ‘산 정상에 오르기’와 ‘내면에서 특별한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 연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전혀 뜻밖의 상황에서 연결고리, 혹은 접점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위의 인용구에서 내가 얻은 지혜는 ‘우리 모두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의 방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였다.


다만 나는 그 안에서 꼭 기도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특별한 장소, 하나의 방을 마련하고 성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이제 내 마음속 고요한 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2012년 1월 23일의 모닝페이지에는 또 하나의 의문스러운 표현이 등장한다.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이완’. 다행히도 이 표현은 어디서 접했는지 알고 있다. 내 인생책 중 한 권에서 배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인생책 또한 왠지 생뚱맞은 것 같은데, <맥스웰 몰츠의 성공의 법칙>이다.

**정신적 이미지 훈련: 많은 사람이 이 방법이 긴장을 풀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과거에 편안하고 기분 좋았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우리 모두는 느긋하고 편안하며 평화로웠던 추억이 있다. 과거의 편안한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세부적인 기억을 더듬어 보라. 세세한 장면들을 보다 많이 기억할수록 긴장은 더욱 잘 풀어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매일 연습한다면 정신적 이미지와 기억들이 더욱 더 명료해질 것이다. **


내면의 고요한 방이라는 표현은 애매하다. 그냥 고요하게 아무 생각도 없이 있으면 마음 속에서 고요한 방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시시각각 온갖 잡생각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갑자기 그냥 고요하게 있기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어떤 이미지 혹은 장면에 집중하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인용문에서 나온 표현처럼 ‘편안하며 평화로웠던 추억’, ‘과거의 편안한 장면’에 집중하면서 긴장을 푸는 것이다.

10여 년 전 내게 편안하고 평화로웠던 장면은 이른 아침 내소사의 벚꽃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과 아직 아기였던 조카 옆에서 잠시 낮잠을 청하던 기억, 아산 온천의 노천탕에서 눈 쌓인 풍경을 바라보았던 때였다. 이 문장을 적으며 지난 기억을 되새기니 저절로 나른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나는 포근한 기억 속의 장면으로 마음속 고요한 방을 채웠다. 어쩌면 내 마음속의 고요한 방은 그때부터 마련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왜 내게 마음속 고요한 방이 필요했을까? 그리고 오늘의 나는 왜 이 표현에 눈길이 멈추었을까?


그 답은 제법 간단하다. 내 마음이 시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른함과 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만큼 긴장하고 움츠러들면서, 쫓기면서 살았다는 뜻일 것이다. 나의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느꼈다면 그건 그만큼 내가 나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고요하게 내 마음을, 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모닝페이지에 익숙해진 덕분에 나 자신과 열심히 대화하면서 살고 있다. 가끔은 내게 화를 내고, 나를 탓하고 심하면 자책과 우울감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화와 원망과 자책과 우울에 오래 깊이 빠지지는 않는다. 그런 감정을 쏟아내면서 비워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는 ‘굳이 억지로 고요함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시끄러워도 괜찮다. 내 안에서 소란스럽게 일어나는 아우성을 모닝페이지에 기록하고 이래서 힘들었구나 이게 불만이었구나 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가끔은 고요를 잃고, 다시 되찾으면서 산다.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시간은 어쩌면 내 안의 고요한 방에 접속하는 시간이다. 그렇다. 내 마음속에는 늘 고요한 방이 있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일 뿐. 오늘 아침도 이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고요한 방에서 내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쏟아내며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를 얻는다.


내소사 1.jpg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내소사. 이번 방문에서는 나무들에 꽂혔다.
내소사 6.jpg 보리수나무 합장. 그런데 막상 보리수나무 사진 어딨?


내소사2.jpg 산을 등지고 있는 내소사에서 멍하니 있는 시간. 멍하니가 아니라 고요하게라고 하자.

내소사5.jpg 불자는 아니어도 저절로 마음이 평화로워지게 하는 사진들.
전나무.jpg 숲 생태계에서는 죽어있는 나무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전나무길.jpg 들어서는 입구부터 아름답다. 마음 속 고요한 풍경을 빚어내게 했던 그 곳으로 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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