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떠나는 멋진 여행

모닝페이지 다시 읽기- 2019년 편

by 루빈

2018년 연말부터 글쓰기를 중심으로 하는 독서모임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글쓰기를 했다. ‘씀’이라는 어플에서 제시된 주제어에 400자 이상의 글을 쓰는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서 2가지를 느꼈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촘촘히 읽는 즐거움이다. 꾸준히 글을 올리는 사람은 네 명이었는데, 같은 주제로도 어찌나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쓰는지 그 색다름이 즐거웠다. 다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라 매일매일 올라오는 글이 마치 연재글을 접하듯 기다려지고 쫄깃쫄깃하기도 했다. 이래서 함께 글을 쓰는구나. 새로운 재미에 눈을 떴다.


두 번째는 일종의 고민이었다. 100일 가까이 매일 글을 쓰다 보니 내 속내가 훌훌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깊은 속사정을, 때로는 치부를 꺼내놓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어떤 말들은 쓰지 못하기도 하고, 썼다 지웠다. 솔직하게 쓰지 못해 답답하기도 했다.


친구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니 내가 ‘공적인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나 솔직하게 써야 하나, 어디까지 내 이야기를 밝혀야 하나. 이 고민은 100일 글쓰기가 끝나고,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온라인 글쓰기 모임의 가장 큰 수확은 모임이 끝난 후에 찾아왔다. 나를 본격적으로 글쓰기의 세계로 인도한 분을 만난 것이다. 모임 초창기에서부터 함께 글을 쓰던 분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제대로 쓰지는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내게 J님은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강의를 추천해 주었다. 추천해 주었을 뿐 아니라 함께 강의를 들었다.


감응의 글쓰기에 대한 J님의 표현. 베트남과 싱가폴을 다녀온 것보다 감응의 글쓰기로 훨씬 더 멋진 여행을 했다.

-2019년 6월 8일


강의를 듣기 전에 망설이고 있던 나를 J님의 근사한 표현이 움직였다. 강의를 들으면서 멋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J님과 나란히 마포의 한 강의실을 찾았다. 책들이 즐비하고 고양이가 노니는 공간이었다. 과제는 한 권의 책을 읽고 그와 관련된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매 강의마다 책이 선정되어 있고, 발표자 한 명의 글을 함께 읽고 합평을 해야 했다.


멋진 여행은 두 번째 강의부터 시작되었다. 그날의 발표자가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며 울었다. 발표자만 운 것이 아니었다. 영화나 글을 보며 잘 울지 않는 나도 울었다. 내 옆에 앉아 휴지를 건네주는 J님,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다 울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만 간신히 아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있으려니 느낌이 묘했다. 묘하게 뭉클하고 따뜻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눈물 속에서 우리는 함께 안전하구나, 나의 아픔을 꺼내놓아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튼, 양말>이라는 책을 골랐고, 10년 넘게 쓴 모닝페이지를 소재로 <아무튼, 모닝페이지>에 대해 썼다. 당시 나는 역자교정에 쫓기고 있었고,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제법 쎈 혹평을 들었던 터라 넋이 나가 있었다. 그래서 글에 충분한 시간과 성의를 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비평은 무척 쓰라렸다. 모닝페이지가 뭔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너무 왔다 갔다 해서 정신이 없다. 수강생들이 한 마디 한 마디 보탤수록 점점 오그라들었다.


은유 작가님도 냉철한 조언을 해 주셨다. 작가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등이었다. 당시 적어두었던 말을 다시 읽고 훗날 모닝페이지 관련 글을 쓰는 데 적용했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243505&memberNo=1256575&vType=VERTICAL



역자교정으로 이미 탈탈 털리고, 강의에서 다시 털리니 스트레스가 심했다. 해야 하는 일(번역)도 못하고, 하고 싶은 일(글쓰기도)도 못하니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져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강의에서 도중하차할까 하다가 이래저래 두어 번 수업을 빼먹었다.


조금 거리를 두다 보니 소란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스멀스멀 다시 강의실에 얼굴을 내밀었다. 2019년 초가을의 나는 이렇게 썼다.


감응에서 참 배우는 것이 많다. 비건, 장애인권, 대안학교 등. 작가란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고 쓰는 사람, 사회의 아픈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쓰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


- 2019년 9월 2일


나에게 강의를 추천한 분이 말하는 여행의 의미에 차츰 눈을 뜨게 되었다. 감응의 글쓰기라는 강의 그 자체, 매 강의마다 읽는 책들, 함께 책에 대해 토로하는 시간도 물론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진진한 여행은 학인들의 글 속에서 접하는 세상으로의 여행이었다.


열렬한 비건인 학인의 글을 통해서는 비질이라는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물 학대가 얼마나 잔인한 폭력인지를 배웠다. 그것이 폭력임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한 움직임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았다.

나 역시 나의 아픔을 꺼내어 처음 병원에 입원했던 시기의 일을 털어놓는 글을 썼다. 따뜻하게 이해해주고 나의 힘듦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자기와 주변 사람들의 아픔뿐 아니라 사회의 아픔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그 강의실에 있었다. 나는 이들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다. 강의가 거듭될수록 여행 속에 깊이 빠졌다.


강의가 모두 끝나고 나서도 후속모임이 계속되었다. 후속 모임을 하면서 J님이 한 달 글쓰기라는 소모임을 만들었다. 11월에 시작한 글쓰기는 해를 넘겨서 계속되었다. 내게는 2번째 백일 글쓰기의 경험이 생긴 셈이다.


수업을 진행하던 홍대에서 몇 번 오프라인 모임도 있었다. 하지만 마감에 쫓기고 코로나에 떠밀려 우리의 모임은 결국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안전한 공간에서 글을 나누었던 추억과 다른 사람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던 시간은 내게 그 어떤 여행보다 멋진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강의실에서 만난 정치경제학적 고양이
2019 2.JPG 강의실 밖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흥겨운 곰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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