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된다면

2010년의 책들 3. 프라하의 소녀시대

by 루빈

오늘 이야기할 작가는 요네하라 마리다. 처음 접했을 때는 마치 멘토처럼 여겼다. 직업적으로 공통점이 있을 뿐 아니라 박력이랄까 기세랄까 옮긴이의 말 마지막에도 ‘내 등을 뒤에서 밀어준 것 같은 느낌이 드는’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듬직하고 든든한 느낌마저 든다. 실제로 본다면 좀 무서울 것도 같지만.

프라하의 소녀시대라는 책은 작가가 프라하에서 소녀시절을 보낼 때 만났던 소녀들을 훗날 나이가 들어 다시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다. 세 편의 연작소설로 되어 있는데, 1편은 그리스의 리차, 2편은 루마니아의 아냐, 3편은 유고슬라비아의 야스나라는 친구를 다룬다.


어린시절의 친구를 찾아간다는 설정이 어찌 보면 딱히 평범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요네하라 마리가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함께 보낸 친구들을 찾아가는 이 소설에서만큼은 무척 파란만장하고 때로는 쓰라리기까지 하다.


찾을 수 있을까,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심정으로 조마조마하게 따라가다가 ‘드디어 만났다’라는 쾌감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뭇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도 비슷했다.


이 책의 매력이 무엇인지는 설명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듯하다. 세 소녀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지만 이 글에서는 2편에 등장하는 루마니아의 아냐 편을 다뤄보기로 한다.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이라는 제목에서처럼 아냐는 다분히 문제적인 성격이다. 착실해 보이는 모범생인데 사소한 부분에서의 거짓말을 지나칠 정도로 아득바득하기 때문이다.

아냐가 떠벌리는 거짓말의 대부분은 [...]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고스란히 당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들은 알아챘다. 안냐가 거짓말을 할 때는 동그란 눈을 말똥말똥 뜨고선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것을.

“쉬, 너네들 조심해. 아냐가 또 말똥거린다.”

반 아이들은 눈을 꿈적이며 신호해주었다.

[....]

하지만 거짓말쟁이 아냐는 그런 거짓말 버릇까지 포함해서 우리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그건 아냐가 상냥한 데다 친구를 위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마리와 아냐는 1964년 여름에 헤어졌다가 1995년에서야 다시 만난다.


1995년이 저물어가던 무렵, 예정된 러시아 주요 인사의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어 버렸다. 수행 통역을 할 예정이던 나에게 갑작스럽게도 2주일의 자유 시간이 허락되었다. 그래서 부쿠레슈티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자유화 이후 프라하나 부다페스트로 몇 번이나 여행을 했지만, 부큐레슈티는 초행이었다. 그 옛날 ‘동구의 파리’라고 불리던 풍취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황폐한 시가지 모습에 덧붙여 오가는 사람들의 공허한 표정,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이 차분하지 못한 눈동자에 충격을 받았다. 그 눈동자에서는 독재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은 데 대한 기쁨이나 희망 같은 것을 읽을 수가 없다. 시가지도 사람들도 아직 차우셰스쿠 충격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차우셰스쿠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서 나무 위키의 도움을 받아보았다. https://namu.wiki/w/%EB%8B%88%EC%BD%9C%EB%9D%BC%EC%97%90%20%EC%B0%A8%EC%9A%B0%EC%85%B0%EC%8A%A4%EC%BF%A0


“북한의 김일성, 크메르 루주의 폴 포트와 함께 최악의 공산권 독재자를 언급할 때에는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며, 동시에 세계의 모든 독재자들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아냐의 아버지는 공산당원으로서 다른 루마니아 사람들이 궁핍함에 시달릴 때 자신은 궁궐같은 대저택에서 살고 딸 아냐만은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면서 그녀를 영국으로 결혼을 시켜 보낸다. 근 30년 만에 다시 만난 딸의 친구 앞에서 노쇠해진 아냐의 아버지는 자신의 속내를 내비친다.

아냐 아버지는 지팡이를 버리고 내게 쓰러지듯 안기시며 불쑥 이렇게 말씀하셨다.

“후회하고 있단다.”

“예?”

“13년 전에 돌아가신 자네 아버지도 그러셨을 걸세”

아냐 아버지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졌다.

‘아니에요. 아버지가 꿈꾸신 공산주의와 당신이 실천한 가짜 공산주의를 같이 두지 마세요! 법적/사회적/경제적 불평등에 모순을 느껴, 당신(아버지)이 가진 혜택을 모조리 내던지신 분이에요! 당신이 지향한 것은 그 반대였잖아요!’ 하고 마음 속에서는 외치고 있었지만 아흔 노인을 상대로 그런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냐 집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하지 못한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다. 아냐 아버지도 옛날에는 뭐 하나 부족함 없는 유대 상인 집에서 태어나 컸을 텐데, 사회의 모순에 눈 떠 비합리적이던 공산주의 운동에 몸을 던진 것이라고. 투옥당하고 고문당해 다리까지 잃었다. 어디서 그의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을까. 권력을 쟁취한 후부터인가. 우리 아버지도 만의 하나, 일본에서 공산당이 정권을 취했다면 아냐 아버지처럼 되셨을까.


------마리는 위의 인용문처럼 격한 분노?를 느꼈지만 친구 아버지이며 아흔 노인을 상대로 차마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전환이 눈에 띈다. ‘어디서 그의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하셨을까......’라고 아냐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리기 시작한 것.


나를 화나게 하고 모순이라고 느끼는 삶을 산 당사자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고려할 수 있을 만큼 나라는 사람의 시야는 넓은가? 그렇지 않다. 아냐의 이야기를 읽어가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못마땅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아냐의 오빠 미르차는 부모님, 그리고 여동생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베이징에서 귀국한 뒤 아냐는 소비에트 학교에 편입했지만, 난 우연히 그 무렵 어머니 친구가 유니크한 학교를 열어 학생을 모집한다기에 그 곳에 들어갔지. 거긴 보통 루마니아인 아이들도 다니는 학교였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집과 걔네들의 생활이 그리도 다른 것에 충격을 받았지. 나와 우리 가족이 누리는 특권이 창피해 죽겠는 거야. [...] 보통학교에 다니면서 대학에 붙고 나서는 집을 나와 기숙사에 들어갔어. 그때부터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어, 뭐. 창피하잖아. 그딴 집에서 산다는 것이.”

[...]

“지금 돌이켜 보니, 나나 우리 부모님들은 공범자인지도 몰라. 이런 죽일 놈의 체제에서 빨리 아냐를 빼내고 싶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미르차는 이 나라를 버릴 마음이 없었잖아요.”

“내겐 좋은 친구들이 많았거든. 그들을 두고 나만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는 비겁한 짓은 절대로 못했지. 아버지가 이런 빌어먹을 체제의 한쪽 봉을 떠매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지. 그런 짓을 했다면 내가 나 자신을 평생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

(미르차와 헤어지고 난 후 다시) 혼자가 된 방에서 결국 난 이튿날 아침까지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내게 아냐를 비난할 자격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내가 아냐와 미르차 같은 처지가 된다면, 아냐가 택한 길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미르차처럼 행동할 용기가 있었을까.

그래도 나는 미르차 쪽의 삶에 더 공감한다. 그러니 혹여 아냐와 같은 길을 택했더라면 나 자신을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못해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후회와 자책으로 괴로워했을 것이다. 아냐처럼 미르차를 괴짜라고 멸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냐는 자기 모순 같은 것을 안 느끼는 것일까?

... 그야 머리로는 안다. 친구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사는데 나만 혼자 특권에 기대어 안전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은 비겁한 짓임을. 안락한 생활을 누리며 후회와 자책으로 괴로워하기보다(혹은 아냐처럼 자기 모순과 거짓말이라는 전략을 택하기보다) 몸이 불편하고 생활이 어려워질지라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쪽이 훨씬 더......... 용감하고 멋진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꼭 그럴까? 작가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본다.

‘내게 아냐를 비난할 자격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내가 아냐와 미르차 같은 처지가 된다면, 아냐가 택한 길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미르차처럼 행동할 용기가 있었을까.’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삶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더 깊이 읽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당장 나의 내공이 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 해본 생각을 해보고 나와는 썩 다른 것 같은 처지에 잠시만이라도 들어가본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넓어지려고 하는 것(물론 독서를 통해서만은 아니다)과 그냥 나인 채로 내 안에 갇혀 사는 것은 분명 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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