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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빈 Jun 30. 2023

스타일과 하루키

2010년의 책들 2. 일류의 조건 2.

일류라고 일컫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능숙하게 만드는 요령이 있다. 일류들이 일을 처리해 나가는 방식에는 그 사람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이 묻어나는 경우가 많다. 능숙함의 정도를 향상하는 것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이 두 가지 과제는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깊숙이 얽혀 들어간다. 물론 처음 얼마 동안은 기초적인 기술을 배워야 한다. 거기에 누구보다 뛰어나게 일을 하기 위해,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기술로 가장 자신다움을 발휘하며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과제다.    

 

-----스타일을 확립한다는 과제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몇몇 인물이 그 예로 등장하는데, 그 중 특히 내가 끌렸던 사례는 아무래도 무라카미 하루키다. 좋은 소설을 쓰는 것과 꾸준히 달리는 것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이런 궁금증도 하루키를 통해서 해소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스타일이란 단순히 소설 문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스타일까지 포함한다. 스타일을 형성하기 위해 우선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할 작은 규칙을 정한다. 스타일은 추상적이 아니라 작지만 구체적인 일들로 완성하는 것이다. 먹고 자는 운동하는 등의 지극히 기본적인 생활 습관에서, 타인과 사귀는 법, 업무를 진행해 나가는 요령, 소설가로서의 최적 환경을 만드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소설가 무라카미로서의 스타일 형성에 관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많이 읽고 많이 써 본다’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냥 많이 읽고 쓰기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말하듯 스스로 반드시 지켜야 할 작은 규칙에 충실하면서 생활 스타일을 가다듬는 것은 글쓰기에서든 자신이 목표로 하는 무언가를 달성하는 것에서든 ‘중요하고 의미있는 과제다’.      


루틴과 갓생이 화두로 떠오른 요즘의 트렌드를 하루키는 2009년 이전부터 알고 실천해 오고 있었다는 점도 새삼 눈이 간다. 하루키가 자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형성해 갔는지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처음 2개월 반이라는 시간은 매일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무슨 내용이든 닥치는 대로 써 나간다. 펜이 쓱쓱 나가지 않아도, 지루하고 힘들어도, 그리 즐겁지 않아도 일단은 써 나간다. 지루하고 힘들어도, 그리 즐겁지 않아도 일단은 써 나간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정오를 지날 때까지 계속 쓴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그러다 보면, 달리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점점 ‘여기가 급소다, 정점이다’ 생각하는 곳에 이른다. 그러면 과감히 들어가라. 그런데 정작 체력이 바닥나버리면 그것처럼 낭패가 있을까. 그동안의 2개월 반이라는 시간이 의미를 잃는 순간이다.”

2주에 불과한 핵심 부분에 들어가려면, 2개월 반이라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체력이 관건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일에 집중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될 때의 시간이, 말하자면 골든타임으로 들어가기 위한 보조 기간인 것이다. 그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이토록 높은 집중상태를 경험할 수 없다.
 

----- 급소다, 정점이다 라고 느껴지는 시간이 골든타임일 것이다. 그 시기에 이르기까지도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막상 진짜 집중해야 할 때 체력이 바닥나 버린다면 정말로 낭패다.    

 

나는 실제로 이런 경우를 여러 번 겪기도 했다. 책 작업을 하면서 마감을 앞둔 2주간이 핵심 기간, 골든 타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내 경우는 그렇다) 그런데 이 시기에 지쳐서 아픈 적도 더러 있었고, 그야말로 에너지가 바닥난다는 느낌에 간신히 끝내기만 한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으레 지금 이렇게 지치거나 아프지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평소의 생활 스타일 관리와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운동을 놓지 않고 적지 않은 비용을 필라테스에 투자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내게 중요한 일, 잘하고 싶은 일을 더 제대로 하기 위해 체력을 갈고 닦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 속에 깊고 깊은 굴이 있고 그 깊은 바닥에서 맑은 물이 솟아오른다고 가정해 보라. 소설을 쓰려면 그 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깊고 깊은 굴속으로 내려갔다 올라왔다, 또다시 내려갔다 올라왔다 하는 작업을,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의 주인공처럼 힘겨운 노동을 계속해 나간다. 힘들고 괴로워도 그것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므로. 앞에서 이야기한 2주 동안의 핵심시간, 집중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제는 더 깊은 굴속을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일일이 바닥까지 내려가서 정보를 수집해 오지 않아도 이미 내 몸은 고도의 정보처리 기지국이 되었다. 가려고 생각만 하면 어느새 그곳으로 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초인적인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헉헉거리며 굴 속을 드나들어야 한다. 그것이 필수 조건이다. ”     


-------내 스타일은 어떤 습관으로 구축할 수 있을까? 능숙해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좀 더 필요할까? 이런 의문도 품게 해 준 책이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한 대목 더 살펴보겠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은 심신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피로감이다. 이런 상태의 피로감을 습관으로 들이고 기술로 터득할 수만 있다면 인생에서 가장 안정된 기본기를 획득한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은 무엇일까. 능숙함은 그 최선의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말해서 능숙함은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스포츠를 하든 예술 활동이나 공부를 하든 일정 수준으로 능숙하려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과열한 에너지를 말끔하게 연소하고 충만한 기분으로 피로를 느끼고 싶다면, 능숙함을 터득하려는 의식만이 확실한 지름길이다. 
 

------친구와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나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는 성취감을 느끼면서 잠자리에 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분 좋은 피로감, 심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피로감이 지난날 내 행복의 정의와 맞닿아 있다.     


날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게 하는 기술이 있다면 그 기술이야말로 훔치고 싶다는 말로 오늘의 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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